한표…한표, 「결단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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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떠들어서 분위기 깨지겠다, 박 후보도 한 표>
○…3일 상오 7시 40분 현직 대통령인 박정희 공화당 후보는 부인 육영수 여사와 함께 서울자9132호 「세단」차를 타고 김현옥 서울특별시장의 안내를 받으며 투표 장소인 신교·궁정동 투표소(서울 농아학교)에 도착했다.
『시험을 잘 치렀는지 모르겠어요』 몰려든 기자들에게 육 여사가 이렇게 말하자 박 대통령은 『기자들이 너무 떠들어대니 자유 분위기가 깨지겠다』고 농담을 걸며 투표통지표 1번을 꺼내들고 투표장에 들어갔다.

<91세 노모 모시고, 윤 후보 내외 투표>
○…『오늘 날씨가 좋아서 선거가 잘 되겠군.』아침 8시 50분 투표소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선 윤보선 신민당 후보의 첫말―.
그는 어머니 이범숙 여사(91), 부인 공덕귀 여사와 함께 약 2백미터 떨어진 별궁동회로 걸어가 투표했다. 투표소에는 1백명을 넘는 동민들이 줄지어 섰고 때마침 투표하러 온 수도 육군 병원 환자들은 박수를 보내기도….
투표 차례를 기다리며 윤 후보는 『정권 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이 투표로 나타날 것으로 믿는다』고 소감을 말했고 공 여사는 『어젯밤엔 늦게 잠이 들어서 꿈꿀 여가도 없었어요. 소망은 공명 선거가 되었으면 하는 거고….』

<불통 전화선 즉시 복구 요청, 선거위 한 때 혼란>
○…3일의 중앙선관위는 각 시·도·군 선관위와의 전용 전화선이 약 40개소에서 별 다른 이유 없이 갑자기 불통되는 바람에 선거관리 사무처리가 한 때 마비되는 등 큰 혼란을 빚어냈다.
상오 10시 현재의 전국 투표 상황을 집계 발표키로 했던 중앙선관위는 1백96개선 중 약 40군데가 불통되면서 일부 우체국의 청약 취소 통고가 날아 들어와 2층에 설치된 투·개표 종사원들을 당황케 했다.
중앙선관위는 긴급 전체회의를 열고 이에 대한 대책을 협의 박경원 체신 장관을 불러 청약 취소를 항의, 불통 전화선의 즉시 복구를 요구했으며 이에 대해 박 장관은 2시간이내에 복구해 주겠다고 약속, 12시 25분까지에 두 군데만 남기고 모두 개통, 하오 1시 반 완전 복구.

<투표용지 너무 꼭 접지 말라, 공화당원에 지시>
○…『총재 각하의 긴급지시를 하달합니다』―투표개시 세 시간이 지난 3일 상오 10시 공화당의 개표 상황실에 비치된 10여 대의 전화는 일제히 움직였다.
각 시·도 당에서는 중앙당에서 이 전화를 받고 바로 지구당 당원에 하달토록 되어있다.
박정희 총재의 특별 지시란―『투표용지에 기표를 한 후 투표용지를 너무 꼭 접지 말고 투표함에 넣어라』는 것. 꼭 접으면 기표 인주가 번져, 무효표가 될 염려가 있다는 것은 이날 아침 투표를 한 박 총재의 착안.

<태풍 휩쓴 뒤처럼, 신민당 표정>
○…투표 날, 신민당사는 태풍이 휩쓸고 간 뒤처럼 조용하기만 했다.
아침 8시 중앙당사 정문「셔터」가 열린 뒤 한시간이 지나도록 몇몇 사무 당원만이 나와 서성거릴 뿐.
9시 30분 장기영 선거 사무장이 나온 후 10시 깨에 정해영 사무차장이 나왔을 뿐 다른 간부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엉뚱하게 시내 가회동에 산다는 어느 청년이 찾아와『투표 통지서가 안 나왔는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묻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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