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못된 말 계속하면 개성공단서 전부 철수" 협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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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개성공단으로 출경을 통제한 지 이틀째인 4일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등 개성공단 입주업체 대표들이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공단 정상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221명이 귀환해 개성공단에는 우리 국민 608명과 외국인 6명 등 614명이 잔류하고 있다. [안성식 기자]

북한은 3일에 이어 4일에도 개성공단 출입제한 조치를 이어 갔다. 당초 1017명과 차량 697대가 북한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근무를 마친 221명과 차량 140대만 돌아왔다.

 개성공단 근로자들은 “북한의 강경한 태도를 느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오전 개성에서 돌아온 근로자 백정진(37)씨는 “개성은 현재 사실상 ‘전투준비태세’”라며 “철모를 쓰고 마른 풀로 위장한 무장군인들이 평소보다 훨씬 많고, 차는 위장막을 덮은 채 운행하고 있다”고 개성 현지 분위기를 설명했다. 또 다른 개성공단 입주업체 직원도 “2009년 천안함 때보다 심각한 상황”이라며 “세관 직원은 사복 대신 군복을 입고 있었고 소지품을 검문하는 군인들의 숫자도 어제부터 1명에서 4명으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공단 내부는 원자재뿐만 아니라 직원들이 당장 먹을 식자재까지 바닥나고 있다. 개성공단 내 두 곳의 편의점을 운영 중인 CU도 이번 조치로 개성공단으로 식료품 등 물류 배송을 중단한 상태다. 오후 5시, 마지막으로 개성을 빠져나온 신발공장 근로자 김정준(56)씨는 “원자재가 부족해 조업도 부진하고 식사도 부실하게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은 개성공단 폐쇄를 공식 거론했다.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은 “남조선 괴뢰패당과 보수언론이 못된 입질을 계속하면 개성공단 근로자를 전부 철수시킬 수 있다”며 “개성공업지구는 파산 전야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조평통은 “남조선이 ‘돈줄’이니 ‘더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북’이라느니 하며 우리가 개성공단을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고약한 나발을 계속 불어댔다”며 “우리 군대는 그에 대처해 개성공단에 대한 남조선 인원의 통행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이 ‘달러박스’인 개성공단을 쉽게 포기하진 않을 것”이라는 우리 측 전망에 불쾌감을 표시한 것이다.

 조평통은 또 “괴뢰패당은 우리 군대의 조치를 걸고 들면서 ‘대규모 억류사태 발생’이니 ‘인질구출대책’이니 하며 더욱 못되게 놀아대 사태를 험악하게 몰아가고 있다”며 “개성공단에 대한 군사적 도발은 곧 역적 패당의 자멸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개성공단에서 서울이 불과 40㎞도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입을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협박도 했다. 지난 3일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개성공단 근로자를 상대로 인질사태가 벌어질 경우 군사적 조치를 감행할 수 있다”고 한 발언에 대한 반발이다.

 북한의 잇따른 강경 발언에도 불구하고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앞으로 북한의 경제개혁이나 대외투자 유치를 고려하면 폐쇄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개성공단에 거주하는 현지 관리자도 “북한이 군사적 조치 대신 개성공단 폐쇄 압박을 취하는 건 협상을 하자는 제스처”라고 풀이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북한이 실제로 공단 폐쇄라는 초강수를 둘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긴장 고조를 노린 공단 폐쇄조치도 취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재 북한에 체류 중인 우리 측 인력은 610여 명이다. 북한의 민속명절인 ‘청명절’(5일)로 인해 6일 입경 예정 100여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7일까지 개성에 발이 묶일 전망이다. 북측은 이날 남한 기업 근로자의 귀환계획을 10일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것이 ‘10일까지 철수하라’는 것으로 와전되면서 한때 공단 폐쇄설이 돌기도 했다.

글=정원엽·김영민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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