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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과 재판|미 「셰퍼드」 박사 사건의 교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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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독자와 기자가 마주 앉아 있다. 퍽 날카로운 지성의 소유자인 듯한 이 독자와 정의감이 강한 듯한 인상을 풍기는 기자는 세상살이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끝에 「신문재판」에 화제의 초점을 모으는 것 같았다.

<「스캔들」위주로>
▲독자=재판사건의 보도는 신문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것 아니겠어요? 이른바 상업지가 되면서 신문은 재판사건을 흥밋거리로 다뤄, 독자를 끌어들이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당사자가 되고 보면 「인권」에 저촉되는 문제로서 가슴아픈 일인데, 「스캔들」의 경우, 흥미 본위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마구 들추거든요. 외국에도 그런 일이 허다합니까.
▲기자=참 재미있는 명제입니다. 권좌의 제4부라 일컫는 신문이 명성 높은 재판을 하게끔 채찍질한 예가 없진 않지만 상업지가 출현하면서부터는 왕왕 오보를 내거나 계류중인 사건을 추측기사로 다뤄 법정모욕죄에 걸린 적도 있습니다.
「신문재판」의 대표적인 실례로 흔히 미국의 「셰퍼드」살인사건을 듭니다.

<셰퍼드 사건이란>
▲독자=「셰퍼드」살인사건이란 뭔데요?
▲기자=아직도 당사자가 살아 있어 말한다는 것 자체가 「신문재판」이란 독자의 비난을 받지 않을는지. 사건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1954년 7월 3일 밤, 「오하이오」주 「크리블랜드」시의 정골외과의 「새뮤얼·셰퍼드」씨의 아내 「마릴린」이 자택의 2층 침실에서 참살된 사건이 일어났다. 남편 「셰퍼드」씨는 괴한이 밖에서 침입, 「마릴린」을 죽였으며 자기는 그 범인을 집밖까지 추적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외부로부터 침입한 흔적은 분명치 않았고, 살인의 혐의는 「셰퍼드」에게 걸리는 듯했다. 그러는 사이에 「셰퍼드」를 중상하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 「크리블랜드」 전시에 번졌다. 신문은 대중의 기호에 영합, 사실무근의 「고시프」로 사실을 뒷받침하는 듯한 기사를 마구 써댔다.
「오하이오」주 최대의 신문 「크리블랜드·프레스」는 7월 16일자 사설에서 수사당국이 「셰퍼드」체포를 망설이고 있다고 비난, 사건해결을 위해 하루속히 손을 쓰도록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7월 30일자의 사설에서 『결단을 구한다- 「셰퍼드」를 즉시 형무소에』라는 「타이틀」밑에 『살인이 행해졌다. 여러분은 용의자의 제1인자가 누군지를 알고 있다. 그 용의자를 취조하는 것이…여러분의 의무일 것이다』고 주장했다.

<편파적 신문보도>
「셰퍼드」는 7월 30일 밤 10시에 체포되었다. 공판은 10월 18일부터 개시되고, 공판기간 중 신문은 일방적인 보도로 지면을 장식했다. 이때 도하의 모든 신문이 장단을 맞춘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12월 22일 배심의 평결이 행해지고 「셰퍼드」는 제2급 모살의 죄로 유죄가 됐다. 그후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연방 최고재판소는 1966년 6월 6일 피고 「셰퍼드」는 신문의 편파적인 보도로 인해 헌법 제6조가 보장하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가 없었다는 이유로 연방 지방재판소에 반려, 피고를 석방하든지 재심리를 하도록 명해졌다. 결과는 무죄였다.

<태도 달라진 논조>
그는 실로 1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는데 우스꽝스러운 것은 그때의 군중과 그 신문이 이번에는 『「셰퍼드」, 기운을 내라』 『우리들은 「셰퍼드」편이다』 『그대를 위해 기도한다』고 떠들어대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지요.
▲독자=신문은 공공의 복지와 안녕 질서를 위해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보도할 책임이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요즘의 신문은 돈을 주고 「스캔들」을 낳은 주인공의 수기를 사는 경향마저 있어요.

<수표「저널리즘」>
▲기자=부끄러운 말이지만 그런 것을 「수표저널리즘」이라고 비웃는 독자도 있지요. 신문이 상업지가 되면서 부수(보급확장)를 무시할 수 없게되자 한 신문이 『「와이리」참살사건해결! 부랑자가 두 사람의 살해를 자공』하는 「타이틀」밑에 엽기적 사건을 먼저 터뜨리면 부수 때문에 다른 신문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이런 잘못은 신문이 상업지가 되면서 경영자나 기자가 모두 부수(보급확장)에 신경을 쓰게 되고 「읽히는 신문」을 만들려고 지나친 경쟁을 하다가 본의 아닌 잘못을 저지르는데 기인하는 것이지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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