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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와 사귀느냐의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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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A와 B가 연애 중이란 게 알려진다. 놀람과 축하도 잠시뿐, 별별 얘기가 꼬리를 문다. 이들의 연애 기간이 A와 옛 연인 C의 과거 연애와 겹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고 엉뚱한 인물 D까지 루머에 등장한다. 설령 속된 말로 양다리를 걸쳤대도 법에 저촉되는 일은 아니다. 상처받은 당사자가 나서면 모를까 남들이 옳다 그르다 판결을 내려줄 일도 아니다. 하지만 A와 B는 누구나 아는 스타다. 루머가 확산된 것도 그래서다. 이를 방관하면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결국 A, B, C가 각각 해명에 나서고야 화제가 일단락된다.

 스타의 사생활이 대중의 관심사가 되는 건 숙명이다. 앞서 든 예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프랑스 학자 에드가 모랭은 이미 반세기 전에 이런 현상에 주목했다. 그는 스타를 ‘완전한 상품’으로 표현했다. 사생활까지 그 일부인 상품이라는 얘기다. 물론 그가 주목한 건 할리우드의 초창기 스타들, 특히 팬들이 스타를 숭배하는 현상이었다. 본래 할리우드 영화는 배우들의 이름을 따로 밝히지 않았다. 이름이 알려지면 높은 출연료를 달라고 할까 우려한 탓이다. 그런데 배역에 매료된 팬들이 이름 모를 배우를 향해 팬레터를 쏟아내기 시작했고, 나아가 이 같은 스타를 내세운 영화 제작이 붐을 이뤘다.

 요즘의 ‘스타’는 이와는 다른 면면이 있다. 이제 영화뿐 아니라 가요, 스포츠, 클래식 등 다양한 영역에서 스타가 배출된다. 편의상 스타로 불리지만 실은 그저 유명인을 뜻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요즘 스타에겐 열혈팬만이 아니라 안티팬도 막강하다. 루머나 악성댓글을 실시간으로 확산하는 인터넷과 SNS도 있다. 이를 통해 스타의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추락하거나, 뒤늦게 해명에 성공하더라도 그 사이 큰 고통을 겪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모랭은 대중에게 숭배받는 스타를 반쯤은 신(神)적인 존재로 표현했는데, 어쩌면 신에 비견돼야 하는 건 대중일지 모른다. 스타를 신의 지위에 올려놓는 것도, 끌어내리는 것도 대중이기 때문이다.

 좀처럼 TV 출연을 마다하던 스타급 배우 한 사람이 얼마 전 TV 토크쇼에 등장했다. 시쳇말로 ‘예능 체질’과 거리가 먼 그가 TV 카메라 앞에 앉은 모습은 어딘가 낯설고 불편했다. 실은 그가 출연을 결심한 사정을 떠올렸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4년 전 동료 배우와 결혼할 당시 먼젓번 결혼과 이혼에 대한 루머와 비난에 한참 시달렸다. 최근 그 같은 비난이 새로 확산되면서 퍽 괴로웠던 모양이다. 스타를 숭배하는 한편, 그에게서 인간적인 면모도 발견하고 싶은 게 대중의 속성이다. 하지만 대중의 손에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거나 질식해 버리면 스타는 더 이상 스타가 아닌 존재가 돼버린다. 그를 통해 대중이 얻던 기쁨과 즐거움도 사라진다. 대중이라는 신이 자비와 절제를 겸비해야 하는 이유다.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