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선거, 노원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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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서울 노원병 4·24 보궐선거에 출마한 허준영 새누리당 후보가 여의도 당사에서 공천장을 받은 뒤 미소 짓고 있다(왼쪽).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철거 이주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상계동 양지마을을 방문해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김지선 진보정의당 후보가 서울 상계2동 상가지역에서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뉴스1]

오는 24일 치러질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 무소속 출마를 예고했던 민주통합당 이동섭 예비 후보가 안철수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민주당의 무공천 방침에 따라 공천을 받지 못하게 되자 불출마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이로써 선거 구도는 새누리당 허준영 후보와 안 후보, 그리고 진보정의당 김지선 후보의 3파전으로 가닥이 잡혔다.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음으로써 안 후보는 훨씬 유리해졌다. 리얼미터의 지지율 조사(3월 27일)에선 안 후보 38.8%, 허 후보 32.8%, 김 후보가 8.4%의 지지율을 보였다.

 새누리당과 진보정의당은 안 후보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새누리당 허준영 후보는 2일 “제1야당이 무소속을 지지하는 게 말이 되느냐. 완전 코미디”라며 “이동섭 예비후보를 지지했던 지역 주민들의 허탈함을 내가 달래드리겠다”고 했다. 직전에 의석(노회찬 전 의원)을 차지하고 있던 진보정의당의 천호선 최고위원도 이날 라디오에 나와 “당 공천을 받은 적이 없고 민주당의 공식 후보도 아닌 예비 후보자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나서는 것은 참 희극적”이라며 “노원병 선거가 기괴한 선거로 변해 가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진보정의당이 비난하고 나선 건 안 후보의 처신과 관련이 있다. 안 후보는 1주일 전 진보정의당 김지선 후보가 후보 단일화 가능성을 내비치자 “새 정치의 가치를 앞세우고 정면 승부하고 싶다”고 선을 그었다. 민주당에 대해서도 이중적 처신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민주당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1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안 후보 측이 제3자를 통해선 여러 번 도와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이동섭 후보를 통해서도 요청이 왔다. (그래서 이 후보가) 지지 선언을 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물밑에선 민주당과 안 후보 간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뉘앙스다.

 이동섭 예비후보의 불출마 이후 새누리당에선 오히려 “어렵지만 해볼 만한 선거”라는 기류가 흐르고 있다. 새누리당 이철우 원내대변인은 “보궐선거는 투표율이 그렇게 높지 않기 때문에 당의 조직력, 선거운동 양상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시당을 중심으로 선거 지원에 나서는 ‘조직선거’ 전략을 다듬고 있다. 안 후보가 ‘바람’은 있지만 ‘조직’이 약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에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음으로써 조직 대결에서 우세를 보일 수도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서울시당 위원장인 유일호 의원이 “안 후보는 무소속인 까닭에 체계적인 선거운동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새누리당에선 이길 경우 대어를 잡음으로써 정국 주도권을 잡고, 박근혜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반전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선거에서 지더라도 ‘안철수발(發) 야권 개편’이란 부수적 효과를 노릴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야권 개편이 본격화될 경우 한동안 야권의 전열이 흐트러지면서 내부 문제에 집중하게 돼 여당이 정책 이니셔티브 등을 쥘 수 있다는 계산이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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