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옥살이에 줘야 할 돈, 운수업자만 잇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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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서울 강남구 소재 운수업체 W사는 2001년 벌금 50만원을 냈다.

 회사 직원이 서해안 고속도로를 과적 상태에서 운행하다 적발됐는데 옛 도로법상 양벌규정(兩罰規定·회사 임직원의 법규 위반 시 고용주를 함께 처벌하는 규정)에 따라 회사도 벌금을 낸 것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2009년 도로법상 양벌규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 결정의 효력은 소급적용됐다. 이에 W사는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신청, 무죄를 확정받았고 곧바로 형사보상을 청구했다. W사는 올해 초 당시 납부한 벌금 50만원에 연 5%의 이자 등을 합산한 102만원을 돌려받았다. 형사소송에서 무죄가 확정된 피고인들이 “잘못된 구금 또는 벌금으로 입은 피해를 보상해달라”며 내는 형사보상금 청구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1일 대법원에 따르면 2009년 271건에 불과했던 전국 법원 형사보상청구 인용건수는 지난해 4만1940건으로 3년 새 154배나 늘었다. 보상액도 2009년 135억여원에서 지난해 391억여원으로 급증했다. 청구 건수 급증에 따라 한 건당 평균 지급금액은 5012만여원에서 93만여원으로 줄었다.

 늘어난 형사보상 사건 대부분은 과적 등 도로법 위반으로 양벌규정에 따라 처벌받은 운수회사들이 신청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의 경우 형사보상사건 중 90%가 도로법 위반 사건이었다. 2010년에는 전체 184건 중 도로법 위반이 73건으로 39.7%에 불과했으나 2011년 719건 중 629건(87.5%)으로 급격하게 늘었고 지난해(8월 기준)에도 642건 중 561건(87.4%)에 달했다. 해당 사건들 대부분은 벌금액이 50만원 안팎이다. 반면 억울한 옥살이 등에 대해 보상해주는 일반사건은 2010년 111건, 2011년 90건, 지난해(8월 기준) 81건이었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2009년 헌재의 위헌 결정 이후 운수회사들이 대거 형사보상을 청구하면서 사건 수와 보상 금액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보상이라는 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변호사들이 운수회사들을 ‘법(法)테크’ 차원에서 소송을 부추긴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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