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업 50년 … 내 그림은 결국 자연이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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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업 50년 회고전을 여는 윤명로(77) 전 서울대 교수. 도미니크 샤토 파리 1대학 교수는 “윤명로의 예술은 비록 소리는 없지만 강한 음악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평했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나라도 없이 태어났다. 이름도 잃었다. 이름을 되찾았을 땐 나라가 두 동강 났다. 초등학교 때 일이다. 한국 현대 추상화의 원로 윤명로(77) 화백에게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이다.

 1950년대 중반, 그가 서울 미대에 입학했을 땐 실존주의가 대학가를 휩쓸었다. 전후의 허무함이 세상을 사라잡았다. 그는 졸업을 앞두고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에 ‘벽B’(1959)로 특선을 했다. 사르트르(1905∼80)의 소설 ‘벽’에 등장하는 사형수를 모티브로 한 추상화였다.

 윤 화백은 화가 지망생들의 유일한 등용문이던 국전의 혜택을 버리고 ‘60년 미술가협회’를 창설했다. 덕수궁 담벼락에서 반(反) 국전선언을 했다. 70년대엔 독자적 표현방식을 모색한 ‘균열’ 연작, 80년대에는 물질적 현상의 우연성과 신체의 반복을 대비한 ‘얼레짓’ 연작을 선보였다.

 90년대 ‘익명의 땅’ 연작에서는 자신의 몸을 도구 삼아 자연의 기운을 화폭에 담았으며, 2000년 ‘겸재예찬’ 연작에서는 세상을 관조하는 여유와 명상, 운필의 충만한 기운을 보여줬다. 여백 앞에서 고뇌하고 사유하는 한편 72∼2002년 서울대에 재직하면서 후학을 양성했다.

 윤 화백의 화업(畵業) 50년을 정리하는 회고전이 경기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195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10년 주기로 큰 변화를 보여줬던 그의 시대별 대표작과 지난해 작업한 대형 신작 등 60여 점이 걸렸다.

 그는 “예술가란 모방을 허락 받지 못하고 태어난 고독한 존재들”이라며 “피카소는 일찍이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했지만 그가 정말 하고픈 말은 ‘예술은 모방이 끝날 때 시작한다’는 얘기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 60년간 내가 뭘 그렸나 돌아보니 결국은 자연이더라”며 “요즘처럼 복잡한 정보화 사회에 관객이 내 그림을 보면서 위안을 얻으면 좋겠다. 인간의 오감을 안정시키고 풍요롭게 하는 것이 결국 그림이 아닌가 생각한다”고도 밝혔다. 전시는 6월 23일까지. 일반 3000원. 02-2188-6000.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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