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다시 미국시민 된 김종훈이 보는 조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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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승희
워싱턴특파원

워싱턴포스트(WP) 3월 31일자 오피니언면에 실린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의 글엔 원망이 가득했다. 제목부터가 ‘새로운 세상에서의 오래된 편견(Old prejudices in a new world)’이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난도질한 한국의 정치문화를 ‘마녀사냥’이라고 표현했다.

 인사청문회 직전 스스로 사퇴하겠다고 선언한 뒤 미국으로 돌아간 지 한 달이 돼 가지만 그의 글엔 아물지 않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 그는 “한국의 인터넷은 물론 주류 언론 매체가 나를 스파이로, 아내를 매매춘 연루자로 표현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런 환경에선 아웃사이더인 내가 장관직을 수행할 수 없어 포기했다”고 했다.

 김 전 후보가 주장했듯이 글로벌 시대에 이중 국적을 문제 삼는 건 ‘오래된 편견’이다. 기자도 2월 23일자 34면 칼럼에서 그 편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WP 기고문을 읽는 건 찜찜하고 불편했다. 따져보면 그가 주장한 언론과 야당의 ‘마녀사냥’은 장관 후보자가 겪어야 할 하나의 통과의례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수전 라이스 유엔대사가 그랬고,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그 통과의례를 치렀다. 김 전 후보는 그 통과의례를 버티지 못한 채 루머의 공격만으로도 항복을 선언한 사람이다. 패자는 유구무언이듯이 낙자(落者)도 유구무언이어야 했다.

 글에서 그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직을 수락한 이유에 대해 “한국 재벌은 국내총생산의 80%를 차지하지만 고용은 6%에도 미치지 못한다. (…) 과학·통신 기술의 세계적인 중소기업을 만들어 좋은 일자리를 만들려고 했다”고 적었다. 그가 장관직에 내정됐을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은 그가 일군 아메리칸 드림, 고국을 위해 일하겠다는 큰 소명의식에 박수를 보냈다. 결과적으로 그는 그런 이들의 바람을 가족과 자신의 명예가 손상됐다는, ‘작은’ 피해의식 때문에 저버린 사람이다.

 1일 현재 그가 쓴 WP 기고문에는 45개의 영문 댓글이 달렸다. 이런 글도 있다. “정치적으로 그런 공격을 예상 못했다면 당신이 순진했거나 무지했던 거고, 알면서도 중간에 포기했다면 무책임한 것”(아이디 chesak, fcia 등).

 나는 한국 사회가 이중 국적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 김 전 후보 같은 사람에게 조국을 위해 일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 시민으로 되돌아간 그의 기고문을 보면서 자칫 편견이 더 커질까 걱정스럽다. 그는 이렇게 썼다. “미국에 대한 나의 사랑은 깊고 강하다. 그 축복에 늘 감사하겠다….”

박승희 워싱턴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