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결정적 물증 없이 혐의 공개 … 기본 안 지킨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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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수사에 착수한 지 2주가 가까워오는데도 경찰의 ‘성접대 의혹사건’ 수사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검찰의 특수수사 전문가들은 물론 일부 경찰 전문가도 ▶내사 사실 전격 공개 ▶수사 전환 이후 핵심 인물인 건설업자 윤모(52)씨 혐의 입증 및 신병 구금 실패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수사의 기본 ABC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경찰이 31일 윤씨의 강원도 별장 압수수색에 나선 것을 두고 경찰 내부에서조차 ‘뒷북치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 간부는 “출국금지 요청이나 압수수색 영장 신청 등이 늦어지면서 핵심 관련자들에게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줬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경찰 측은 “새로운 진술들이 나와 확인 차원에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씨로부터 성접대를 받은 의혹을 사고 있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실명이 나온 뒤 사퇴까지 했는데도 경찰은 핵심 인물인 윤씨를 아직 정식 조사조차 안 했다. 결정적 물증인 성접대 동영상의 원본을 확보하지 못한 것도 수사가 교착상태에 빠진 가장 큰 이유로 거론된다. 서울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이번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윤씨의 구체적인 진술”이라며 “의혹을 이렇게 키운 상태에서 아직까지 윤씨를 정식으로 소환하지 않았다는 것은 수사가 잘못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사건의 핵심 피의자에 대한 조사 및 증거 확보 없이 내사 사실을 밝히고 수사 내용을 공표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의 한 간부도 “이번 사건의 수사 개시를 놓고 지휘부와 일선 수사라인 사이에 갈등을 벌이다 성급하게 내사 사실을 언론에 공개한 것부터가 문제였다”며 “검찰 고위직이 연루된 사건인 만큼 내사 단계에서 충분히 증거를 확보한 뒤 수사를 시작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경찰이 향후 검·경 수사권 조정 등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런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특히 일부 검찰 고위 간부가 사건에 연루된 것처럼 카카오톡 등을 통해 실명이 퍼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선 지난해 성추문 검사 사건 등으로 궁지에 몰린 검찰을 더욱 몰아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검찰에선 보고 있다.

이가영·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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