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세상탐사] ‘일자리 2개’에 목매는 오바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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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호 31면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중견업체 K사(서울 서초동 소재)의 입사 면접 대기실에서 최근 벌어졌던 풍경이다.

 “고등학생 자녀까지 있다니 저는 양보하겠습니다. 면접 안 보고 그냥 갈게요. 다른 데 알아보겠습니다. 꼭 합격하십시오.”
 “처음 뵙는 분인데 이렇게 고마울 수가….”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극 같은 이 장면은 당시 면접 현장에 있던 채용 담당자의 목격담이다. 이 업체는 지난달 고용노동부의 일자리 인터넷 사이트인 ‘워크넷’(www.work.go.kr)에 회사 임원을 수행할 운전기사 1명을 뽑는다는 채용공고를 냈다. 연봉 3000만원(월 250만원)의 일자리. 순식간에 243명이 몰렸다. 채용 담당자는 243대 1이라는 경쟁률이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운전기사이긴 하지만 일자리 찾기가 워낙 어렵다 보니 대졸자도 많이 몰릴 것이라고 예측은 했었다.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더 놀라웠다. 학력이 너무 화려했기 때문이다. <사진>

 ‘연세대 심리학과, 한양대 건축학과, 중앙대 경영학과, 동국대 법학과, 과학기술대 화학공학과…’.

 청년 취업자의 경우 대졸 이상 학력을 필요로 하는 국내 일자리는 115만 개에 불과하다는 게 통계 수치다. 하지만 현재 대졸 이상자는 215만 명이다. 자신의 눈높이보다 더 낮은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도 100만 명 이 넘는다는 계산이다. 지원자들의 경력도 만만찮다. 공무원 출신에서부터 굴지의 건설·금융·유통·기계업체의 부장급 이상 간부 경력자도 수두룩하다. 지원자들의 연령 분포를 보면 더욱 숙연해진다. 직장을 잃은 40대 가장(家長)이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20대 4명, 30대 65명, 40대 108명, 50대 57명, 60대 9명’.

 회사 측은 서류심사 등 복잡한 검증 과정을 거친 뒤 최종적으로 3명을 면접장으로 불렀다. 이들은 면접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자연스럽게 서로 힘겨운 실업자 생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얼마 뒤 40대 남자가 50대 남자에게 “선생님이 더 절실하네요. 아직 저는 젊고 자식이 학교에 다니지 않으니 양보할게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생판 모르는 초면의 실업자들끼리 서로 동정심을 발휘해 최종적으로 50대 남자가 합격하도록 했다. 한화그룹에서 구조조정을 당해 실직한 지 1년이 넘었다는 이 합격자는 고등학생 자녀가 2명이라고 한다. 실업급여도 더 이상 받지 못해 그간 지옥 같은 생활을 했다고 털어놨다.

 이토록 안정된 ‘일자리 하나의 무게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래 전부터 세계 각국 정부가 모든 경제정책의 1순위를 일자리 창출에 두는 이유다. 일자리만 만들어진다면 대통령, 장관, 외교관까지 발 벗고 나서고 어디든 찾아가는 게 요즘 선진국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도 ‘스타트 업 3.0’이라는 일자리 2개 만들기(?) 정책이다. 1년 내 직원을 2명 이상 고용하는 창업자에게는 어느 나라 사람이든간에 미국 비자를 내주겠다는 법안이다. 일자리가 늘어난다면 이민법이라도 바꿔서 ‘창업 비자’를 내주겠다는 유인책이다.

 출범 한 달을 넘긴 박근혜 정부는 가계 빚 해결이 경제정책의 최우선인양 유난히 강조한다. 18조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으로 개인 빚을 탕감해 줘도 ‘깨진 독에 물 붓기’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개인 빚 탕감은 ‘절망과 무기력의 연장’ 정책일 뿐이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때 긴급처방으로 썼던 취로사업(영세 근로자의 생계를 위해 정부에서 벌이는 사업)만큼도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개인 신용불량자가 320만 명에 이른다니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도 시급하다. 그러나 현 정부는 신용불량자보다 일자리 없는 실업자 구제가 더 화급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신용을 회복시켜 자활을 돕는 것’보다 ‘일자리를 만들어 신용을 회복시키는 정책’이 먼저라는 얘기다. 지난 29일 박 대통령도 서울고용센터에 가서 구직자에게 취업희망카드를 나눠주면서 ‘고용률 70%(현재 63%)를 달성하겠다’고 다짐했다. 창조경제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게 핵심인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눈에 쏙 들어오는 대목이 없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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