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업은행 민영화 전면 중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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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산은금융지주와 기업은행 민영화를 전면 중단했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정책인 금융공기업 민영화를 사실상 뒤집은 것이다.

 기획재정부 이석준 2차관은 29일 경제정책방향 후속 브리핑에서 “산은지주 매각은 올해뿐 아니라 당분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산은 매각(일정)이 관련법으로 정해져 있는 만큼 국회와 협의해 풀어나갈 것”이라며 “금융공기업 전반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도 관계부처와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와 또 다른 정부 당국자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번 정부 내엔 안 한다고 봐야 한다”고 전했다. 산은지주는 산업은행·대우증권 등을 거느린 자산 191조원 규모의 금융공기업이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 ‘공기업 선진화 계획’을 세워 대대적인 민영화를 추진했다.

옛 산업은행은 2009년 상업금융을 맡은 산은금융지주와 정책금융을 담당하는 한국정책금융공사로 분리돼 산은지주 매각이 추진돼 왔다.

 정부는 기업은행에 대해서도 정부 지분을 50% 이상 유지해 정책금융기관으로 남기기로 했다. 이 차관은 “기업은행을 민영화하면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역량이 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기업은행 지분 68.6% 중 경영권에 영향을 주지 않는 15% 안팎만 매각할 방침이다.

 민영화 중단에는 정치권도 긍정적이다. 새누리당 나성린 정책위의장 대행은 “원칙적으로 민영화를 해야 하지만 지금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살 사람이 마땅치 않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며 “지금은 일자리도 부족하기 때문에 앞으로 경제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변재일 정책위의장은 “민주당이 산업은행 민영화를 반대해 왔는데 박근혜 정부가 민영화 계획을 철회한다면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했다.

 정부의 방침 전환은 ‘제값을 받고 팔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28일 “민영화를 한다 안 한다를 떠나 제대로 팔리겠느냐, 팔려도 제 가격을 받을 수 있느냐가 굉장히 불투명하다”고 설명했다. 정치권과 금융권에선 두 은행이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이행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임희정 박사는 “대통령의 공약인 중소기업 육성을 추진하기 위해 중소기업 발전의 핵심적 정책수단이 되는 산은과 기은 민영화를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올 추경 규모는 최소 12조원 이상으로 불어나게 됐다. 재정부는 균형재정을 맞추는 데만 12조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성장률 하락으로 약 6조원의 세수가 줄고, 민영화 중단으로 6조원의 세외 수입이 추가로 줄어든다. 이 차관은 “지금과 같은 상황을 방치할 경우 하반기에는 재정절벽(Fiscal Cliff)과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 최소한 12조원+α 규모의 추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경기회복을 위한 예산, 대통령의 공약 실천을 위한 예산이 더 필요하다. 추경 규모가 12조원을 훌쩍 넘어설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2009년 28조4000억원 규모에 육박하는 ‘수퍼 추경’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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