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칼럼]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 어디까지 왔나

중앙일보

입력

대한혈액학회
만성골수성백혈병연구회 위원장
경북대학교
종양·혈액암센터 손상균 교수

몇 해 전 계속되는 체중 감소와 발열로 필자의 병원을 찾았다가 백혈병 진단을 받은 40대 남성 환자가 있었다. 환자의 정확한 병명은 만성골수성백혈병으로, 필라델피아 염색체라고 부르는 비정상적인 염색체(유전자)가 형성되면서 암 유전자를 생성시키는 백혈병이었다. 질환의 위중함과 이로 인한 공포가 컸기 때문인지 당시 환자는 자신의 거주지에서 몇 시간이나 떨어진 서울 지역 병원으로 치료를 다녔었다. 하지만 이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이 환자는 다시 필자가 근무 중인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긍정적인 치료 경과를 보이고 있다. 힘들게 서울을 오고 가는 수고도 덜어 삶의 질도 향상됐다고 말한다. 사실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서울에서 치료를 받으나 지역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나 행해지는 의료 행위의 질이나 처방되는 치료제가 거의 동일하다. 지난 몇 년간 우수한 치료제가 개발되었으며, 국내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를 위한 의료의 질 수준도 크게 향상됐기 때문이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만성골수성백혈병은 화학치료를 통해 3~5년 정도의 생존율을 보이던, 치료가 어려운 대표적인 난치질환의 하나였다. 동종골수이식 수술이 존재했지만, 적합한 골수를 찾는 것 자체가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환자에게 맞는 골수를 찾더라도 수술을 받기 위해 필요한 전후 조치가 비교적 신체 상태가 양호한 환자들만이 견딜 수 있을 만큼 큰 체력 소모를 요했다. 때문에 환자들은 생사의 갈림길 위에서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이식 수술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고, 이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환자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만성골수성백혈병은 더 이상 난치질환이 아니다. 표적 항암제 글리벡(이매티닙)의 개발로 10여 년 전에 만성골수성백혈병으로 진단받았어도 약물복용만으로 정상인과 같이 생활하고 있는 환자들이 다수이다. 최근에는 슈퍼 글리벡이라 불리는 타시그나(닐로티닙), 스프라이셀(다사티닙) 등 2세대 표적치료제들이 출시되어 효과뿐만 아니라 약물 부작용도 개선되어 환자들의 삶의 질이 더 개선되고 있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이 비록 암이지만 치료만 잘 받으면, 당뇨나 고혈압과 같이 암과 함께 평생을 정상인처럼 살 수 있는 만성질환화 된 것이다. 이러한 만성골수성백혈병의 치료 환경의 진화에 대해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치료제의 발전과 진보의 측면에서 표적치료제의 표적공격률이 높아짐에 따라 치료 효과 향상은 물론 장기생존을 보장할 수 있게 되었다. 글리벡의 후속제품으로 개발된 타시그나의 경우, 백혈병 완치 단계라고 볼 수 있는 ‘완전분자학적 반응’에 도달하는 환자들의 비율이 40%에 가깝다. 이것은 글리벡에 비해 2배 정도 높은 확률이며, 이러한 효과는 글리벡에 내성이 생기거나 추가적인 유전자변이가 진행된 환자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글리벡에서 흔하게 나타났던 근경련이나 관절통, 구토, 발진 등의 부작용도 타시그나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아, 환자들의 전반적인 삶의 질이 향상됨에 따라 백혈병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장기간 암유전자가 발견되지 않는 환자를 대상으로 타시그나의 복용 자체를 중단한 이후의 경과에 대한 임상 시험까지도 예정될 정도로 만성골수성백혈병의 완치가 실제로 가능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둘째, 국내 의료진들의 정보 습득 속도가 빨라지며, 보편화된 최신 치료 가이드라인이다. 치료제의 발달과 함께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의 가이드라인 역시 10년 사이 급속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최근 업데이트된 만성골수성백혈병의 국제적 가이드라인인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를 살펴보면, 새로 진단된 환자들을 대상으로 1세대 치료제인 글리벡보다는 이후 개발된 타시그나 등의 치료제를 권장하고 있으며, 치료제 변경의 기준도 과거에 비해 세분화되고 있다. 또한 곧 업데이트될 유럽백혈병네트워크(ELN) 가이드라인에서도 더욱 엄격화 된 기준으로 약물선택을 할 수 있도록 업데이트될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혈액학회 주도로 지난 2006년에 재정된 한국 치료 가이드라인의 개정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통일성 있는 표준치료방침을 제시하여 많은 병원들에서 만성골수성백혈병의 검사 치료의 일관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환자가 어떤 지역에서 진단이나 치료를 받더라도 표준화된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학회에서는 국내 가이드라인 재정뿐 아니라 만성골수성백혈병 연구회를 따로 결성하여, 의료진을 대상으로 많은 의료진의 진단과 치료 수준의 향상을 위해 지속적인 교육 및 연구를 이끌고 있다.

셋째, 국내 병원들의 백혈병 진단과 치료 반응 검사 수준이 상향 평준화되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혈액암은 진단과 연구를 위한 시료 채취가 비교적 쉽고, 치료 효과 또한 빠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유전자 진단 기술의 발달에 따라 가장 큰 치료 진전이 이루어진 질환이다. 이러한 진단 기술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되고 있다. 그 예로 현재는 암유전자 잔여 정도를 체크하려면 환자가 일주일 이상 기다려야 검사 결과를 받아볼 수 있는데, 올해 말에는 혈액 채취 후 2시간 만에 검사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기계가 국내 보급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높은 수준의 유전자 진단 기술이 보편화됨에 따라, 전국의 많은 병원들이 백혈병 진단과 반응 평가를 위한 선진 장비들을 갖추게 되었고, 여기에 앞서 말한 의료진들의 치료 수준까지 향상되면서 전국적으로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 성과는 타 질환들과 대비하여 매우 수평적인 발전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는 의학적으로나 환경적 측면에서나 많은 진전이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이에 덧붙여 필자가 환자들에게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환자들 스스로가 이러한 질환과 치료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최선의 치료를 위해서는 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최신의 정보가 필수적이며, 이를 위한 환자들의 적극성과 강한 치료 의지, 여기에 의료진의 효과적인 치료가 동반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지속적인 학계의 교육과 가이드라인 개정, 보다 나은 치료 환경을 만들기 위한 정부의 환자 및 의료단체 지원 등, 백혈병 완치를 위한 사회 다각적인 노력도 필수적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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