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낮잠 특허' 깨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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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를 받기만 하면 뭐합니까. 사회에서 활용돼야 제대로 된 특허지요."

일본 도쿄(東京)에서 니와(丹羽)국제특허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니와 히로유키(丹羽宏之.73)변리사는 '특허 유통'의 선구자다.

1994년 한 발명가로부터 "내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고 싶다"는 상담을 받으면서부터 특허 유통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테크노 비즈니스 교류회'를 설립했다.

교류회는 매년 두차례 특허 보유자와 생산업자.판매업자 등 60여명이 참가하는 정보교류.협상모임을 개최하고 있다. 니와씨는 "지금까지 특허 10건이 상품화됐다"고 밝혔다.

이 교류회는 특허청이 97년부터 특허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매년 전국 10~13개 도시를 순회하면서 개최하고 있는 '특허 유통 페어(시장)'의 모델이 됐다.

이 페어는 기업.연구소.대학 등이 갖고 있는 특허 기술을 전시하고 기업.개인들과 판매.사업화 등을 논의하는 특허시장이다. 97년에는 출품사와 입장객이 각각 5백31개사, 4만명이었으나 2001년에는 각각 9백37곳, 28만여명으로 급증했다.

특허 유통에 눈을 뜨기 시작한 일본 정부.기업.사회가 올들어 본격적인 특허 유통망 개혁에 발벗고 나섰다.

특허 등 지적재산권에 국운(國運)을 걸고 있는 일본은 세계에서 출원.등록이 가장 많은 국가지만 갖고 있는 지적재산권을 제대로 활용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미국보다 대학.연구기관.기업간 연결고리가 약하고, 분쟁처리 기간도 길어 지적재산권의 유통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잠자는 지적재산권을 깨우자=일본 금융청은 올해 신탁업법을 개정해 지적재산권을 금융기관의 신탁업무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신탁회사는 기업.개인이 보유 중인 지적재산권을 위탁받은 후 지적재산권의 예상수익을 근거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게 된다.

도쿄도 스미다(墨田)구청과 와세다(早稻田)대는 올해부터 와세다대 지적재산권을 지역 기업이 활용해 상품화하는 산학협동 사업을 시작했다. 대학과 지방자치단체가 이같이 손잡은 것은 처음이다. 또 비영리법인 '페이턴트 서치 어소시에이션'은 특허 경매시장을 만들겠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분쟁처리 기간을 줄이자=일본 특허청은 평균 2년 3개월 걸리는 특허분쟁 심사기간을 1년으로 줄이기 위해 올해 특허법을 개정키로 했다.

정부 지적재산전략본부도 지적재산권 소송을 신속히 끝내기 위해 올해 민사소송법을 개정, 도쿄(東京).오사카(大阪)지방법원에 특허 전문가들을 집중 배치해 1심을 전담케 하기로 했다. 또 올해부터는 변호사 이외에 변리사도 지적재산권 소송 대리인이 될 수 있어 분쟁이 신속하게 처리될 전망이다.

◇대학을 특허기지화하자=일본 문부과학성은 올해 공모방식으로 국.공.사립대 30곳을 선정해 '지적재산본부'를 설치한 뒤 정부예산(학교당 8천만엔)으로 기업의 특허전문가나 변리사를 파견, 특허 관련사업을 지원키로 했다.

내년부터는 국립대 교원이 취득한 특허를 대학 소유로 전환해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대신 올해 안에 국립대 교원의 특허 보상 상한선(특허수입의 5~30% 이내에서 최대 6백만엔)을 철폐해 특허취득 의욕을 높이기로 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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