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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일본의 두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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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서승욱
도쿄 특파원

이젠 연례행사가 돼 버린 것 같다. 26일 발표된 일본 정부의 교과서 검정 결과 말이다.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사회 교과서가 또 늘었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어떤 교과서는 ‘한국이 일방적으로 점거하고 있다’는 표현을 새로 집어넣었고, 어떤 책은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최신 버전으로 내용을 업데이트했다.

 일본의 영토 야욕과 역사 왜곡이 결코 가볍게 볼 문제는 아니지만, "매년 한 번씩 도발하는 너희들도 지겹겠다”며 무시하고픈 기분도 마음 한편에 밀려든다.

 어쨌든 일본의 교과서 도발에 많은 한국인이 격분했고, 우리와 전혀 다른 이유로 일본 우익들의 반응 역시 우리 못지않게 뜨거웠다.

 27일 우익 신문들의 지면은 그 놀이터였다. 그들은 “검정 결과를 보면 종군 위안부에 대해 ‘(일본군이) 연행을 했다’거나 ‘강제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데 이건 자학적 역사관에 근거한 너무나 반일본적인 내용 아니냐” “한국 등 다른 나라의 교과서와 비교하면 역사적인 경위에 대한 설명이 별로 없다. ‘한국이 다케시마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일본의 공식 입장을 기술한 교과서조차 없으니 이래서야 어떻게 학생들에게 진실을 가르치겠는가”라며 펄펄 뛰었다. 내년부터는 ‘교과서를 쓸 때엔 침략당한 이웃 나라를 배려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기준까지 ‘자학주의적’이라며 걷어차겠다는 아베 신조 총리를 정면 상대해야 한다니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교과서 검정 결과가 발표된 26일이 우익들만의 잔칫날은 아니었다.

 “한국인들은 모조리 죽여야 한다”며 날뛰는 반한 우익단체들의 모습이 역겨워 ‘인종차별 집회 반대 서명’을 시작한 일본의 양심 세력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었다. “애국을 한다는 이유로 한국인을 차별하는 것은 일본의 수치”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또 같은 날 교토(京都)부의 의회는 종군 위안부 피해 여성에 대한 사죄, 보상과 진상 규명을 일본 정부에 요구하는 의견서를 가결했다. 이들은 “진상 규명을 통해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역사의 사실과 교훈을 다음 세대에 넘겨야 한다”고 했다. 이 밖에 ‘평화주의 정당’을 자처하는 연립여당 공명당의 분투도 눈물겹다.

 제1야당 민주당이 견제 세력으로서의 힘을 상실한 지금 공명당은 아베와 자민당의 우익 본능을 제어할 유일한 세력으로 꼽힌다. “정권에 짐이 된다”는 우익 언론들의 손가락질과 야유 속에서도 공명당은 묵묵히 아베에게 할 말을 하고 있다. 극단적인 일본의 두 얼굴, 그래도 양심 세력의 분투에 희망을 걸어야겠다.

서 승 욱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