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꾸라」와 경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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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때는 20세기초. 곳은 제정 「러시아」의 「모스크바」. 주인공은 그곳 경찰의 정치부장인 「주바토프」. 자기 딴에는 멋진 연극을 꾸몄다. 노조를 통한 복지향상을 내세우는 경제주의의 물결을 타고 노동자들이 웅성대며 조합을 꾸밀 기세를 보이자, 이를 앞질러서 거세할 계략을 세운 것이다.
요즈음 말로 「사꾸라」를 대량으로 각 공장에 밀파하여 조합을 만들고 그 간부가 되도록 했다.
한동안은 과격하게 흐르는 움직임을 이들이 견제하는데 성공한 듯 보였고, 「주바토비즘」은 다른 지방에서도 유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몇 해 지나는 동안에 역효과가 나기 시작, 엉뚱한 방향으로 사태는 전개 돼 갔다. 당국이 탄압하지 않는 것을 본 노동자들은 이제는 적극적으로 운동을 벌이게 되어, 급기야는 총파업으로 번져버렸던 것이다. 한때의 영웅「주바토프」는 북녘으로 쫓겨가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잔재주가 거역할 수 없는 시류에 휘말려 들어간 것이다.
다 같이 노동운동을 다루면서도 좋은 대조를 이루는 것은 「비스마르크」. 19세기 중엽의 독일에는 산업혁명의 조류를 타고 노동자들이 갖가지 요구를 내걸기 시작했다. 조합으로 뭉쳐지면 다루기 힘들 것을 느끼면서「비스마르크」도 역시 앞지르는 방법을 썼으나, 잔재주는 부리지 않았다.
노동조건을 솔선 개선하고 복지정책을 장려하여 노동자의 불만을 미리 무마했던 것이다.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앞서는 사회보장제도가 독일에서 이루어졌던 연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가 과격하게 변동하고 급변을 막는 의도는 같으나, 「주바토프」와는 그 류가 다른 경륜이었다 할 것이다.
사실 세상이 갑자기 바뀌고 사회가 소란해지는 것을 누구도 원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시대의 큰 흐름을 무시할 수는 또 없다. 온건과 보수를 반동으로 착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잔꾀는 「주바토프」같이 후세의 웃음거리가 되고, 거시적인 경륜이 도리어 원활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음을 우리도 새삼 깨달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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