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의 추억 … 주식엔 약, 채권엔 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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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추경(추가경정예산)이 온다’. 자본시장에 기대와 경계가 교차하고 있다. 상승세인 세계 증시와는 달리 유독 힘 없는 한국 주식시장에서는 추경을 포함한 경기부양책 선물세트를 손꼽아 기다린다. 반면에 전례 없는 강세장이 펼쳐지고 있는 채권시장엔 경계색이 짙다.

 25일 코스피 시장에서는 건설과 은행업종 주가가 2% 넘게 올랐다. 추경과 부동산대책 등 경기부양책에 대한 기대감에서다. 추경을 포함한 정부의 경기부양 노력이 3~6개월 후 실제 경제 성장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경기부양책의 효과는 경제학자 사이에서도 항상 논란거리다. 하지만 적어도 주식시장에서 추경은 분명 호재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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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이후 자연재해 때문이 아닌 경기부양 목적의 추경이 편성된 것은 2001, 2003, 2004, 2008, 2009년 등 모두 다섯 번이다. 그중에서도 국내총생산(GDP) 규모의 0.5% 이상인 큰 규모의 추경은 세 번(2001, 2003, 2009년)이었다. 만약 올해 10조원의 추경이 편성된다면 GDP의 약 0.74%다. 동부증권 분석에 따르면 대규모 추경이 편성됐던 해 매번 주가가 올랐다. 또 하반기로 갈수록 주가 상승폭이 커지는 공통점도 나타났다. 세 해 모두 연말 종가가 그해 최고점에 가까웠다. 이 같은 과거 사례를 바탕으로 장화탁 동부증권 연구원은 “올해 주식시장도 하반기로 갈수록 경기부양책 효과가 뚜렷해지면서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연일 사상 최저 금리를 경신하고 있는 채권시장에는 추경이 단기 악재다. 이번 추경의 재원 마련 방안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 하지만 상당부분이 국채를 발행해 조달될 것임은 분명하다. 수요가 그대로인데 공급이 늘면 가격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실제로 지난 22일 채권시장에 추경 소식이 전해지면서 채권값 강세(금리 하락)가 소폭 누그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공급이 늘어도 수요가 그 이상이면 채권값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오를 수도 있다. 유재호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미 예상된 사안인 데다 규모도 그리 크지 않아 추경 영향력이 대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채권시장에서는 추경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함께 나올지에 관심이 높다. 경기부양책이 단기간에 뚜렷한 효과를 내려면 여러 가지 정책이 동시다발로 나와야 한다고 믿는 전문가는 ‘추경=기준금리 인하’로 여긴다. 지난 22일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책효과를 위해서는 정책 조합(‘폴리시 믹스’)이 중요하다. 정책은 하나의 패키지로 마련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도 기준금리 인하 기대를 높이고 있다. 정용택 KTB증권 연구원은 “추경은 4월 통화정책 결정과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며 “그래야 정부의 경기부양 의지를 강하게 확인시키고, 다른 나라의 양적 완화에 대한 대응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에 이재승 KB증권 연구원은 “2009년 추경을 편성했을 때 국채 금리가 급등했지만 (한은은) 금리를 내리지 않았다”며 “이번 추경도 기준금리 인하를 유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어쨌든 더 이상 정부가 손 놓고 있지 않을 것이란 신호 자체는 좋은 소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KTB증권 정 연구원은 “올해 들어 한국 금융시장이 미국·일본 등과 다른 움직임을 보인 것은 환율과 북한 변수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통화 공급을 늘리고 자국통화 절하를 추진한 미국이나 일본과 대조된 정책 공백 때문”이라며 “공백 해소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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