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천안함 3년 … 안보를 생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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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오일환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보훈교육연구원장

천안함 폭침 3주기를 맞이해 추모 열기가 뜨겁다. 오프라인에서는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폭침 3주기 추모행사를 비롯해 천안함 46용사 위령탑 참배 및 해상위령제, 유가족 및 승조원 위로 격려, 전사자 출신학교별 추모식, 천안함 용사 추모특별사진전, 고 한주호 준위 동상 참배 및 한주호상 시상, 추모 글짓기·그림 그리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준비돼 있다. 온라인의 경우 국가보훈처와 해군본부 인터넷 홈페이지에 ‘천안함 피격사건 3주기 사이버추모관’이 마련돼 있어 매일같이 수많은 네티즌이 참배하고 있고, 트위터에서도 전사한 해군 용사 46명과 이들을 구하려 수색하다 숨진 한주호 준위의 이름을 연이어 부르는 ‘롤콜’ 캠페인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이러한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폭침 3주기 추모행사에 참석해 전사자들과 한 준위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유가족을 위로할 것이라는 소식은 추모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물론 박 대통령의 행사 참석 결정이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따른 안보위기 상황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일시적 행보일지는 모르지만 국가원수의 주요 국가보훈 행사 참석은 과거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국민 통합에 크게 기여하는 상징정치라는 점에서 크게 환영할 일이다.

  사실, 국가보훈이란 과거 역사를 현재적 가치로 승화시키는 ‘기억의 정치’ 기제로서 나라 사랑 정신을 일깨워 국가 정체성을 강화하는 탁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하기에 내적 안보 확립에 필수적인 국민통합을 이끌어내는 데 국가보훈만 한 것은 드물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 서방국가들이 보훈정책을 소프트파워 강화의 귀중한 요소로 삼고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우리 사회 내부를 들여다보면 정치적 민주화의 정도와는 달리 아직 시민사회의 성숙도는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어 계층·세대·지역 간 갈등과 분열이 당장은 좁혀질 기미가 없어 보인다. 상황이 이 지경임에도 마땅히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정치엘리트들은 그 임무를 저버린 채 국민 통합을 훼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학계나 언론계 등 지식사회 역시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 채 국론 분열을 부추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우리의 안보 태세를 심각하게 해치고 있다는 점이다. 3년 전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 우리 사회가 보여준 내부 갈등과 국론 분열 양상은 이러한 사실을 잘 입증해 주고 있다. 심지어 가해자인 북한을 두둔하는 무분별한 언술들이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매체를 타고 난무하며, 이 사건이 마치 한국과 미국의 합작 자작극인 양 변질되기조차 했다. 이는 마치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었다.

  직접 민주정의 아테네는 지도자 계층인 철인들(philosophers)이 궤변론자들(sophists)로 변질됐을 때 사회가 질서를 잃고 망국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고, 남베트남도 정치엘리트와 지식사회가 분별력을 잃었을 때 북베트남의 통일전선전술에 말려들어 공산화되는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역사는 민주주의가 질서를 지킬 때는 안보를 지킬 수 있지만, 그 반대인 경우는 곧 쇠망하고 만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질서가 곧 안보인 셈이다. 눈에 보이는 북한의 위협은 한·미 동맹 군사력으로 충분히 제압할 수 있겠지만 정작 우리 사회 속에 내재하는 갈등과 분열을 해소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돼 있다면 이야말로 안보위기가 아닐 수 없다. 북핵 위협에 대비한 대응체제 마련도 중요하지만 국민 통합을 위한 정신전력 강화 역시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오 일 환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보훈교육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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