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게, 때론 대담하게 손목 빛내는 찬란한 구속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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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호 17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23회 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에 선보인 까르띠에 전시관. 시계 제작 과정을 형상화한 미니어처 전시물이 설치됐다. 1 실리콘과 산화철에 염료를 섞어 고급 시계를 장식하는 ‘에나멜링’ 작업 도구. 2 시계 부품을 장식하는 워치메이커의 작업대.

매년 1월 말 스위스 제네바엔 큰 장이 선다. 인구 20만 명이 조금 못 되는 이 아담한 도시로 전 세계에서 1만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주일 동안 열리는 박람회를 보기 위해 몰려든다. 제네바 호텔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연중 가장 높은 가격임에도 방을 구하기 힘들 정도다. 박람회는 이 도시의 주 언어인 프랑스 말로는 ‘살롱 앵테르나시오날 드 라 오트 오를로제리(Salon International de la Haute Horlogerie)’, 줄여 부르면 SIHH이고 우리말로는 ‘국제고급시계박람회’로 일컬어진다.

2013 제네바 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에서 본 여성 시계 트렌드

3 수백 개의 부품을 완벽하게 조립해 하나의 고급 시계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총지휘하는 워치메이커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한 치의 오차 없이 완벽한 조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4 고급 장신구는 장인과 물질의 대화와 같다. 금속을 녹이거나 보석을 조각하는 작업 등은 장인의 오랜 인내와 물질을 다루는 숙련된 기술 없인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5 ‘까르띠에, 상상력과 장인정신’이란 제목의 전시물.

올해로 스물세 번째인 이 박람회는 세계 고급 시계 시장의 한 축인 명품 그룹 리슈몽(Richemont) 산하 까르띠에(Cartier)ㆍ피아제(Piaget)ㆍ몽블랑(Montblanc) 등 브랜드와 그뤼벨 포지(Greubel Forsey)ㆍ파르미지아니(Parmigiani) 등 독립 시계 제작자들이 참여하는 행사다. 독특한 것은 여느 박람회마냥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브랜드에서 초청한 VVIP, 내로라하는 시계 유통업자, 유수의 언론 관계자와 브랜드 관계자만 출입이 허용되는 독특한 박람회다.

이에 버금가는 시계박람회로 매년 4월 스위스의 또 다른 도시 바젤에서 열리는 ‘바젤 월드(Basel World)’가 있다. 바젤 월드는 리슈몽과 세계 고급 시계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스와치(Swatch) 그룹을 주축으로 열린다. 브레게(Breguet)ㆍ블랑팡(Blancpain)ㆍ자케드로(Jaquet Droz)ㆍ오메가(Omega)ㆍ라도(Rado) 등 스와치 그룹 브랜드를 비롯, 대중 양산 시계 브랜드까지 모두 망라해 1800여 개 브랜드가 선보이는 자리다. 60스위스프랑(약 7만원)짜리 하루 입장권만 사면 누구든 들어갈 수 있다.

본래 스위스를 대표하는 시계 박람회는 바젤 월드였다. 리슈몽 그룹의 시계 브랜드가 따로 살림을 차린 건 1991년부터다. 88년 리슈몽 그룹이 까르띠에ㆍ피아제ㆍ몽블랑 등 최고급 시계 브랜드를 인수하면서 SIHH의 토대가 마련됐다. 그룹 형성 초기 몇 년간은 바젤월드에 참여했지만 리슈몽 그룹의 주인인 남아공 출신 사업가 요한 루퍼트는 “최고급 시계만 따로 모아 진짜 고급 박람회를 만들기로” 결심해 독립한다. 개최 도시도 스위스 고급 시계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주라(Jura) 산맥 자락, 제네바로 옮겨 버렸다.

SIHH는 그래서 리슈몽 그룹 없인 존재할 수 없는 박람회다. 올해 SIHH 참여 브랜드는 16개, 이 중 리슈몽 그룹에 속한 브랜드는 까르띠에 등 11개다. SIHH에 참여하고 있는 랄프 로렌은 리슈몽과 시계ㆍ보석 분야의 조인트벤처 회사를 설립한 끈끈한 관계고, 그뤼벨 포지는 리슈몽 그룹이 지분 20%를 소유하고 있는 오랜 협력 관계다. 실질적으론 13개 브랜드가 리슈몽 그룹 산하에 있는 셈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고 보면 왜 SIHH에 전세계 고급 시계 시장을 가늠할 수 있는 모든 관계자가 일거에 몰리는지 이해할 수 있다. SIHH가 한 해 고급 시계 시장의 가늠자란 것은 이 그룹이 최근 보여주는 영업 실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3월 마감한 2012 회계연도 리슈몽 그룹의 고급 시계 매출액은 총 23억2300만 유로(약 3조4800억원)를 넘었다. 전년도 실적 17억7400만 유로에 비해 31% 성장한 수치다. 게다가 리슈몽 그룹은 까르띠에ㆍ몽블랑 브랜드에서 팔린 시계 매출액은 그룹 회계보고서의 시계 분야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를 감안할 경우 리슈몽 그룹이 2012 회계연도에 올린 고급 시계 매출은 약 40억 유로에 달할 것으로 시장에선 평가하고 있다. 우리 돈 6조원에 이른다. 또 중국 등 팽창하는 신흥 시장에서 점차 영향력을 키워 가고 있는 고급 시계 시장의 경향만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는 것도 SIHH다. 최고급 시계 트렌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바로미터라 불리는 올해 SIHH에서 눈에 띈 여성 시계를 간추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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