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몰라, 사연 없어 … 그래도 귀에 감기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15호 31면

상당히 게으르고 무책임해야 음악을 즐길 수 있다. 해야 할 일은 마땅히 해야만 하고 게다가 바지런하기까지 하다면 어떻게 음악감상이라는 한없는 시간 죽이기를 감당하겠는가. 앞뒤로 LP 음반 한 장 돌아가는 시간을 대략 40분으로 잡고 하루 다섯 장씩만 듣는다 해도 잠깐이면 봄 가고 겨울 추위가 성큼 다가온다. 다행히 내 유전자에는 게으름과 무책임성이라는 DNA가 충만한 듯하다. 유난히 음악에 집중했던 40대와 50대 절반이 그렇게 훌쩍 흘러가 버렸다. 허무하긴 하되 후회할 필요는 없다. 그 시간에 돈을 쌓거나 지위를 높였어도 허무 바이러스는 마찬가지로 위세를 부렸을 게 틀림없으니까. 아무것도 되지 못하게 타고난 종자의 위안이자 깨달음이다.

[詩人의 음악 읽기] 내 인생의 음악 <3>

‘내 인생의 음악’ 세 번째 목록을 만들어 보려고 음반들을 뒤적이다가 퍼뜩 든 생각이 있다. 사연이나 음악성이라는 목적성 때문에 어쩌면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던 음악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잘 모르는 음반’을 의미한다. 요즘 또 불이 붙어 미친 듯이 판을 사들이고 있는데 내게는 몇십 장이라는 단위가 없다. 시작하면 한달음에 몇백 장, 몇 박스 규모다. 어떻게 사느냐고? 재킷 그림을 보면서 영감에 의존하는 거다. 세월이 갈수록 염력은 늘고 늘어 성공확률이 꽤 높다. 들어보고 야호(!) 하는 음반이 무시로 나온다. 그런데 문제는 천성적인 게으름이다. 이른바 유명 음반이야 대체로 다 갖고 있으니 판톤, 수프라폰, 웅가르톤, 에테르나 따위의 동유럽 레이블에 집중하게 되는데 그 체코·헝가리·폴란드·동독 글자들이 대략 난감이라는 점이다. 거기 등장하는 알 수 없는 연주자와 작곡가의 내력을 일일이 추적할 성실함이 내게는 없다.

조금 전까지 체코의 판톤 레이블에서 나온 바이올린 협주곡집을 듣고 있는데 후기 바로크풍으로 곡은 평이하지만 진하고 끈끈하게 밀어붙이는 바이올린 연주가 아주 좋았다. 모처럼 연구를 해보기로 했다. 두 곡이 실린 바이올린 협주곡의 작곡자가 괴상한 부호를 떼고 영어식으로 읽으면 카렐 슈타믹(Karel Stamic)이다. 이전에도 여러 번 접했지만 어떤 책자에도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다. 구글링을 해보기로 했다. 체코 문자라는 암호의 숲을 헤치다가 아, 찾아냈다. 슈타믹은 슈타미츠의 체코식 표기였던 모양이다. 카를 슈타미츠라면 만하임악파의 마지막 세대 어쩌고 하면서 제법 유명하고 작품량도 많은 작곡가다.

다음은 바이올리니스트. 역시 이상한 부호를 떼고 영어식으로 읽으면 즈데넥 브로츠(Zdenek Broz·사진)인데 사진의 생김새로 보아 깐깐한 음대 교수일 것 같다. 구글링은 소용이 없었다. 동명의 체코 정치가만 등장할 뿐 그의 정체를 알 길은 전무했다. 그런데 혹시 그가 체코인들에게는 크게 사랑받는 인물은 아닐까. 혹시 우리나라 연주가들 사이에서도 꽤 익숙한 이름인 것은 아닐까. 이런 궁금함으로 치면 조금 전까지 듣던 음반의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미스터리다. 아틸라 레메니(Attila Remenyi)는 누구며 파벨 요셉 베지파노프스키(Pavel Josef Vejvanovsky), 얀 바츨라프 슈티히 푼토(Jan Vaclav Stich-Punto), 프란티셱 자베르 리히테르(Frantisek Xaver Richter) 같은 이름들은 웬 도깨비들이런가. 그런데도 아무런 정보나 배경을 모른 채 주야장천 듣고 또 듣는다. 게으르고 무책임하게. 아니 흥미롭고 신선하게.

전화번호부를 정리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한 생에 가까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적은지. 허망한 인연으로 스쳐가는 사람이 또 얼마나 많은지. 그렇게 내 삶의 시간을 훔쳐간 시인, 소설가, 음악가, 화가, 배우들에게 인사를! 특히 한 번도 유명해지지 못했던 존재에게 사랑과 우정을! 아니 이 작업실 바깥의 편의점 예쁜 아줌마, 재활용품 가져가는 날라리 할머니, 동네 고깃집 ‘정거장’의 조폭 주방장, 닥터치킨 멸치 사장님, 마중물 독서실 촌놈 총무에게 뜨거운 포옹을!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 헌신의 세계가 음악 듣기다. 시간을 죽이고 자기를 죽이는데 그것도 살아가는 한 가지 방식이 된다. 시간을 알토란같이 아껴 쓰면서 ‘하면 된다!’ 정신으로 용약 매진한 경제개발 30년의 결과물이 무언가. 아이들은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아기들은 태어나지 않고 청년에서 노인까지 죄다 불안에 잠식된 영혼으로 비실비실 살아간다. 알토란 시간을 삶아먹느니 차라리 게으르게 음악을 듣는다. 물론 어마어마한 베토벤도 듣지만 얀 바츨라프 슈티히 푼토 씨도 만나본다. ‘내 인생의 음악’ 목록에 ‘모르는 음반’의 음악가를 끼워 넣기로 한 이유가 이것이다.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