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필 형님 따라 20년 제 기타도 성숙해졌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최희선씨의 첫 연주앨범엔 선후배·동료 연주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그는 그림자로 잊혀지기 쉬운 연주 뮤지션들에게 힘을 실어주려 한다. 기타는 국산 제작사인 길모어 기타가 그의 이름을 새겨 넣어 만든 시그니처 모델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장황한 설명이 되레 사족(蛇足)으로 느껴지는 가수 조용필(63). 올해 데뷔 45주년을 맞은 그의 뒤에는 밴드 ‘위대한 탄생’이 있었다. 기타리스트 최희선(52)은 위대한 탄생의 리더로서 1993년부터 조용필의 곁을 지켜왔다. 가왕 조용필의 산증인인 셈이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음반 ‘어너더 드리밍(Another Dreaming)’을 26일 내놓는다. 같은 이름의 단독 공연도 다음 달 13일 서울 용산아트홀에서 연다. 데뷔 36년만의 일이다. 그에겐 어떤 꿈이 있었던 것일까. 21일 서울 동교동 연습실에서 그를 만났다.

 - 20년 동안 그림자처럼 살았는데.

 “두 가지 꿈이 있었어요. 하나는 쉰 살이 되면 연주 앨범을 하나 내는 것, 또 하나는 록페스티벌에서 상의를 벗고 기타만 메고 나가는 거였죠. 상의 탈의는 한번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몰래 무대에 올라가다 (조용필) 형님한테 붙잡혔어요.”

 - 무대에선 자제하는 모습이 보여요.

 “처음엔 좀 힘들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표출이나 폭발은 절제 속에 있어야 한다는 걸 배우게 됐어요. 기타리스트가 기타만 잘 쳐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음악 전체를 알아야죠. 처음엔 형님이 뭘 지적하시면 속으로 ‘아닌데’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랐는데, 어느 순간 깨닫죠. ‘어, 진짜네!’ 결국 형님 말이 다 맞으니까 거역할 수가 없어요. 그런 면에서 형님은 제 음악 선생님이세요.”

 - 20년을 버틴 비결이라면.

 “엄청나게 힘들죠. 하지만 남들은 평생 한번 서기도 힘든 잠실 주경기장 같은 무대에 매년 서는 영광 등 얻는 게 정말 많아요. 또 형님 노래 듣다가 다른 가수 노래를 듣고 기타 치기가 쉬운 일이 아니죠.”

 -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2005년 평양이요. 북한 사람들이 빨간 야수인 줄 알았는데, 눈빛이 너무 선하더라고요. 막상 무대에 오르니 마네킹처럼 꼼짝 안 해서 형님도 당황하시는 거예요. 나중에 그쪽 노래 몇 곡 하니 풀리기 시작했죠.”

 - 북한에 억류될 뻔했던 해프닝도 있었죠.

 “관광버스에서 김일성 주석이 계신 곳이라는 설명을 듣다가 ‘그럼 수령님 시체가 저기 냉동 보관돼 계신 거예요?’라고 무심코 되물었어요. 천사 같던 안내원이 ‘그러시면 안 됩니다!’라는데, 아차 싶더라고요.”

 - 기타를 중심으로 한 연주 앨범은 모험인데요.

 “배철수 형이 ‘노래가 있어야 해, 무조건’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건 아무리 해도 내 거가 아니잖아요. 기타를 좋아하는 대중, 기타 연주자로 살고 싶어하는 친구들에게 이 한 장의 앨범으로 모든 걸 다 말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곡마다 색깔을 달리 하려 애썼어요.”

 - 조용필씨는 이번 앨범을 어떻게 보시는지.

 “굉장히 조심스러웠는데, 다행히 좋아하시고 많이 신경 써주셨어요. ‘네 앨범 내 앨범 같이 진열하면 보기 좋잖아?’ 하시면서요.”

 - 다음 달 23일 10년 만에 나오는 조용필 정규 19집 ‘헬로(Hello!)’에 대한 기대도 큰데요.

 “아주 젊은 세대들도 좋아할 만한 곡이 많아요. ‘역시 조용필이다’란 평가를 듣지 않을까 해요.”

 - 일정 잡느라 힘드셨겠어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 5월 31일~6월 2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을 시작으로 전국 투어를 할 예정이라 그 전에 앨범 내고 제 공연을 하면 되겠다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형님이 생애 첫 쇼케이스를 다음 달 23일 하신대요. 연습 날짜 피해서 제 공연을 13일로 잡았는데, 그날 싸이가 콘서트를 한다네요. 싸이랑 붙게 생겼어요. 하하.”

글=이경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