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 기틀 … 박근혜 대통령 스승 이만영 박사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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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 시절 고 이만영 박사(뒷줄 왼쪽 넷째). 당시 43명 학생 중 유일한 여학생이던 박근혜 대통령(뒷줄 오른쪽 둘째)이 서 있다. [사진 휴먼큐브]
이만영

국내 정보통신의 선구자이자 정보보호의 중요성을 전파한 이만영 정보보호학회 명예회장이 19일 별세했다. 89세.

 1924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 공대 출신 미국 박사 1호다.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콜로라도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양대 교수로 재직하던 62년 국내 최초의 아날로그 전자계산기를 제작했다. 청계천 고물상에서 부품을, 을지로4가 철공소에서 철판을 구해 미적분 등 복잡한 연산이 가능한 전자계산기를 만들었다.

 고인은 박근혜 대통령의 서강대 전자공학과 재학 시절 스승이기도 했다.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공대 교수로 일하던 72년, 풀브라이트 교환교수로 서강대에 왔다가 당시 대학생이던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다. 박 대통령은 선친인 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고인을 소개했다. ‘조국을 위해 봉사해달라’는 박 전 대통령의 요청에 한국으로 영구 귀국했다. 국방과학연구소 부소장으로 일하며 유도탄을 개발한 고인은 77년부터는 ‘한국전자통신’ 초대 대표로 부임, 완전 국산화된 전자 교환기 개발을 추진했다. 후에 이 회사는 삼성에 인수돼 삼성반도체통신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88년 삼성전자와 합쳐졌다.

 90년 이후엔 정보보호 분야에 주력했다. 지난 1월 발간된 자서전 『내가 가는 방향이 곧 길이다』에 따르면 고인은 90년 노태우 대통령을 만나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암호 및 정보보호 연구가 대세이며, 우리나라도 민간이 이 분야를 연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10년, 20년 후엔 완전히 낙후된다”고 말했다. 90년 정보보호학회가 설립된 계기였다. 고인은 98년까지 4회 연속 회장을 맡았다. 94~99년엔 한국정보보호진흥원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그의 제자였던 양승택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고인이 대한민국의 정보통신 발전과정에 세운 공로는 실로 넓고 크다”고 말했다.

 한양대 전자통신공학과 교수·부총장, 서울 공대 초빙교수, 경희대 초대 석좌교수 등을 지냈다. 국민훈장 동백장(83년), 대한민국 학술원상(90년), 한국공학한림원 대상(98년), 국민훈장 무궁화장(2000년) 등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김옥랑씨와 아들 종훈(재미 사업)·정훈(한양대 교수)씨, 딸 주훈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5호, 발인은 22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도 양평군 무궁화공원묘지. 02-3410-6915.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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