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흔드는 인터넷 정치 … “문혁 때 홍위병 버금가는 파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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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시진핑(習近平) 시대는 마오쩌둥 시대와는 현저히 차이 나고 덩샤오핑 시기와도 분명히 다른 새로운 10년이 될 것이다. ‘차이나 3.0’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중국의 지식인 사회를 연구해 온 마크 레너드 유럽외교관계위원회(ECFR) 위원장의 진단이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마오 시대 30년(1949~78), 덩 시대 30년(1978~2008)에 이은 또 다른 30년의 시작이란 얘기다.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 시기를 덩 시대의 ‘부속물’로 간주한 게 관심을 끈다. 그렇다면 차이나 3.0 시대의 중국은 어떤 모습일까?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기 위한 중국 지식인들의 백가쟁명식 논쟁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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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시작된 중국 전인대(全人大·의회)가 17일 리커창(李克强) 신임 총리의 기자회견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시진핑 시대의 개막을 알린 이번 전인대는 향후 10년 중국의 정책 방향을 예고하는 몇 가지 조치가 눈길을 끌었다. 부패의 상징이었던 ‘철도부’가 해체됐고 민생·복리 증진을 위한 도시화 전략이 소개되기도 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속적인 기득권 포기를 통한 개혁 추진을 역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이 어떤 노선을 걷게 될지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전인대에서 제시된 정책만으로는 큰 방향을 읽기 힘들다. ‘차이나 3.0’을 향한 지식인들의 논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토론은 크게 ‘성장의 후유증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경제)’, ‘정치적 자유화 요구를 어떻게 흡수할 것인가(정치)’, ‘국제적 위상을 어떻게 정립해 나갈 것인가(외교)’ 등의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들은 신우파와 신좌파(경제),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정치), 국제주의자와 민족주의자(외교) 등으로 갈려 자신의 뜻을 펼쳐 나가고 있다.

경제 : 좌우의 날개로 난다

 차이나 2.0 시대(덩샤오핑 시기)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부를 창출할 것인가’였다. 하지만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지금은 부가 오히려 고민의 대상이 됐다. 빈부격차가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등장한 것이다. 이를 놓고 중국 경제학계는 시장·자율을 주장하는 신우파와 국가의 개입·계획을 중시하는 신좌파로 갈려 논쟁을 벌이고 있다.

 신좌파 지식인들은 2008년 미국 월가에서 비롯된 금융위기를 계기로 우파 공격에 나섰다. 만연하고 있는 빈부격차와 부정부패 등은 지나친 시장화가 낳은 부산물이란 지적이다. 덩샤오핑 시기 이후 지속돼 온 성장주의에 대한 비난이다. 신좌파의 대표적인 학자인 왕샤오광(王紹光) 홍콩중문대 교수는 “교육·사회보장·의료보험 등 공공재에 대한 빈약한 투자가 오늘의 불평등을 만들었다”며 “국가가 나서 노동자들의 복지를 늘려주고 사회보장제도를 완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 인상, 기업에만 득이 되는 수출보조금 폐지, 호구제도 개선, 저금리 정책 철폐 등이 이들이 내건 정책이다. 신좌파의 주장은 이미 소득분배 개혁 등으로 ‘차이나 3.0’에 반영되고 있다.

 그렇다고 신우파 지식인들이 고개를 숙인 것은 아니다. 90년대 이후 경제학계의 주류를 형성해 온 우파 경제학자들은 서구 유학 시절 배운 경제이론을 무기로 대응했다. 특히 보시라이(薄熙來)의 몰락으로 좌파 성향의 ‘충칭 모델’이 타격을 받게 되면서 신우파 지식인들은 다시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들은 “국가는 빠져라”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국가·국유기업·국유은행 등은 사회적 부를 독점하고 권력을 돈과 맞바꾸는 정실자본주의 집합체일 뿐이다. 신우파 경제학을 대표하는 장웨이잉(張維迎) 베이징대 교수는 “독점을 깨서 시장의 활력을 살려야 한다”며 “국가와 국유기업이 갖고 있는 거대한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우파의 주장은 왕양(汪洋) 부총리(산업 담당)가 추진하려는 국유기업 개혁 작업에 투영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학계에서는 좌파와 우파의 철학이 ‘차이나 3.0’ 시대에 고루 반영될 것으로 본다. 시장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동시에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정책이 추진되는 구도다. 국유기업과 민영기업, 계획과 시장이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갈 것이라는 얘기다.

정치 : 우파, 민주적 선거제 요구

 “안정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穩定壓倒一切)”는 도그마(교리)는 천안문 민주화 시위가 터졌던 89년부터 지금까지 중국을 지배하고 있다. 공산당은 권위주의를 유지하는 대신 인민들에게 경제성장의 달콤함을 선사했다. 하지만 시진핑 체제가 막 출범한 지금, 중국 사회는 ‘안정의 함정’에 빠졌다. 경제위기와 정통성의 위기가 동시에 밀려오고 있다. “안정 유지에 집착하는 경직된 사고가 사회적 긴장을 궁극적으로 격화시키고 있다”는 게 사회주의 학자인 쑨리핑(孫立平) 칭화대 교수의 진단이다.

 자유주의 성향 지식인들은 해결책으로 민주적 시스템의 구축을 요구한다. 연간 18만 건, 3분마다 한 건씩 발생하는 대규모 폭동을 해결하려면 민중의 분노를 흡수할 수 있는 제도를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011년 말 광둥(廣東)성 우칸(烏坎)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 이후 민주 선거를 도입했듯 말이다. 자유주의 성향의 마쥔(馬駿) 광저우 중산대 교수는 “선거 없는 권력이 중국 정부를 ‘선의의 독재자’로 몰아간다”며 ‘선거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선거를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건 아니다. 대중민주주의는 쉽게 ‘중우정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칸촌의 민주선거 실험도 자산 분배 과정에서 이기주의 충돌로 좌초 직전이다. 이들이 ‘현실을 감안한 점진적 자유화’로 타협하는 이유다.

 신보수주의와 신마오주의로 나뉘는 좌파 사상가들은 강력한 정치 리더십의 복원을 주장한다. 정치력만이 부패와 빈부격차, 이익집단의 횡포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좌파 사상계의 대표주자인 왕후이(汪暉) 칭화대 교수는 “90년대 우파의 등장으로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국가가 됐다”며 “대중을 위한 다양한 공공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정치적 정부만이 기득권과 격돌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심지어 “보시라이의 축출이 또 다른 정치적 억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좌우파 지식인이 공통적으로 주시하는 것도 있다. 바로 ‘웨이보크라시(네티즌 정치)’다. 인터넷이 중국 정치를 바꿀 강력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2012년 보시라이 사건 당시 인터넷은 대중 지도자를 숙청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마이클 안티(趙靜·38)는 “동원된 전자 군중은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과 놀라울 정도로 똑같이 기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차이나 3.0 시대, 네티즌의 힘이 정치 지형을 바꾸는 더 큰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외교 : 네오콤을 주목하라

유럽외교관계위원회의 ‘차이나 3.0’ 보고서 표지. 중앙일보 중국연구소가 곧 번역 출간할 예정이다.

 지난 30년 중국의 외교정책은 덩샤오핑이 제시한 칼날을 숨기고 실력을 기르라는 뜻의 ‘도광양회(韜光養晦)’ 노선을 충실히 따랐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외교 노선의 분화 현상이 뚜렷하다. ‘포스트 덩’ 외교 노선을 어떻게 수립할 것인가를 놓고 서구 중심의 기존 국제질서를 수용하려는 국제주의자와 이에 반대하는 민족주의자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왕지쓰(王緝思)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은 “미국과의 대결보다는 협력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현실적 국제주의자다. 그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와 남중국해 등에서 중국의 공격적 태도가 되레 아시아에서 미국의 힘이 부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있다고 우려한다. 그는 서구와의 관계를 중시하면서도 보다 겸손하고 신중한 해법을 모색한다. 역시 국제주의자로 분류되는 왕이저우(王逸舟)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창조적 참여’를 말한다. 글로벌 이슈 해결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학계에선 민족주의 정서가 뚜렷하다. 옌쉐퉁(閻學通) 칭화대 교수는 외교정책 분야에서 중국의 네오콤(신보수주의 공산주의자)으로 불린다. 그는 과거에 “중국이 미국과 전쟁에 돌입할 때 유럽이 중립으로 남길 바란다”고 말한 인물이다. 옌 교수는 덩샤오핑의 외교 노선을 모두 부정한다. 다극 체제는 양극 경쟁으로, 비동맹 원칙은 러시아와의 동맹 체결로, 불간섭 원칙 대신 미국 수준의 내정 간섭을 주장한다. 그는 더 나아가 중국이 동맹국들에 경제적 원조와 투자, 안전 보장까지 제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같은 주장은 ‘중국은 이제 노(No)라고 말할 수 있다’는 민간의 정서와 어울려 폭발력을 갖고 있다. 중국 내부에 급진적 민족주의자가 늘면서 중국이 세계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게 되는, 이른바 ‘힘의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도 있다.

 소극적이던 중국의 외교정책은 이제 과거의 유물이 되고 있다. 국제주의·보수주의·민족주의 등은 각론에선 서로 다른 입장이지만 ‘탈(脫)도광양회’라는 동일한 꿈을 공유하고 있다.

한우덕 기자·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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