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인터뷰] 탤런트 조상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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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2부에 돌입한 SBS '야인시대'에서 가장 의외의 캐스팅은 '시라소니'역의 조상구다.

시라소니는 김두한과 함께 2부를 이끌어 갈 주역. 액션을 절제하는 김두한을 대신해 볼거리를 선사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다. 제작진이 2부 출연자 캐스팅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도 시라소니를 찾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야말로 '야인'의 생활을 하고 있던 조상구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담당 PD와 작가는 어느날 불현듯 그의 존재를 떠올리고 "바로 이거다!"라며 쾌재를 불렀다는데….도대체 그에게서 어떤 매력을 발견한 걸까.

"엄살 피우는 걸 보니 경성 아새끼들 텃세테 꽤나 시달린 모양이구만 기래. 거 말이디 김두한인가 하는 아새끼는 만나봤네?"(대사 중)

눈썹까지 덮는 덥수룩한 머리카락에 쏘는 듯한 눈빛, 착 가라앉은 목소리, 거친 음색의 북한 사투리…. 제작발표회장에서 만난 조상구(48)씨는 이미 시라소니의 야성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었다.

방영 초기 제작진이 구상했던 시라소니의 원형과 유사하다. 그런데 콧수염을 조금 기른 것을 제외하고는 평소의 모습이라고 하니, 제작진의 혜안에 놀랄 뿐이다.

"회의 중에 누군가 조씨의 얘기를 꺼냈어요. 그 순간 모두가 무릎을 쳤죠. 이후 그가 출연했던 작품들을 세밀히 살펴 봤습니다. 역시 그밖에 시라소니 역을 할 사람이 없다는 확신이 들었죠."(장형일 PD)

"남자라면 한번 출연하고 싶은 드라마 아닙니까? 하지만 제게 기회가 올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게다가 사나이 중의 사나이 시라소니라니요…. 제의를 받자마자 바로 수락했죠."(조상구)

하지만 조상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놀랄 일도 아니다. 야성과 터프함으로만 따지자면 그는 원조(元祖)격이기 때문이다.

조씨는 1987년 영화 '지옥의 링'에서 '까치'역을 맡았던 배우다. 사실 이현세 만화의 주인공 '까치'의 실제 모델이 그다. 이현세씨와는 경주 월성초등학교에서부터 경주고등학교때까지 단짝이었다.

그리고 15년의 세월을 넘어 시라소니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반항아 까치와 시대의 풍운아 시라소니, 절묘한 연결 아닌가.

"오랜만에 몸 깊은 곳에서 전율을 느껴요. 연기의 열정을 너무 오래 감춰 왔던 것 같아요. 드라마는 MBC '미망' 이후 8년 만이니…."

오는 27일 그는 드디어 '야인시대'에 신고식을 올린다. 낭만파 주먹 시대에 당할 자가 없었다고 전해지는 그의 등장은 주먹계 판도에 큰 변화를 예고한다.

드라마에서 그는 김두한과 의형제를 맺고 위기에 놓인 이정재를 구해주지만 훗날 이정재의 동대문패에게 집단 린치를 당하게 된다.

"배포가 큰 인물이에요. 출연하길 정말 잘했어요. 느낌이 아주 좋아요."

그의 등장은 '야인시대'팬들에겐 반가운 소식이지만 충무로에는 아쉬운 소식이기도 하다. 당분간 그가 번역한 영화를 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영화 번역가다.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작인 '타이타닉'에서 최근 액션 히트작 '트리플 엑스'까지 2백편이 넘는 영화 자막이 조상구의 손을 거쳤다.

최근 시청률 하락에 고민하고 있는 '야인시대'. 까치의 터프함과 영화 번역가의 섬세함을 겸비한 조씨가 어떤 시라소니로 시청자의 눈길을 끌 것인가. 그 결과는 곧 나온다.

이상복 기자 jiz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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