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는 내 나약함 깨닫는 과정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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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기례 수녀는 25년째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 자라는 걸 지켜볼 때 가장 뿌듯하다”고 했다. [광주광역시=프리랜서 오종찬]

살레시오 수녀회는 헐벗은 아이들의 수호성인 같은 수도자 공동체다. 1872년 이탈리아에서 설립된 이래 세계 곳곳의 가난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카리스마’(영성적 특징)로 삼아왔다.

 영화 ‘울지마 톤즈’의 고(故) 이태석 신부를 떠올리면 수녀회의 활동을 짐작할 수 있다. 신부가 속했던 남성 사제들의 살레시오회가 수녀회와 이를테면 남매지간이다. 살레시오회를 창립한 돈 보스코(1815∼88) 성인(聖人)이 마리아 도메니카 마자렐로(1837∼81) 성녀(聖女)를 만나 의기투합해 세운 게 수녀회다. 아프리카 아이들 교육에 땀과 눈물을 다했던 이 신부의 헌신이 수도회의 전통인 셈이다.

 앞으로 살레시오 하면 한 사람을 더 떠올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수녀회에서도 한국인 선교사가 맹활약 중이다. 아프리카의 외딴 섬 마다가스카르에서 활동하는 김기례(56) 수녀다.

 김 수녀는 1989년 처음 섬에 발을 들였다. 4, 5년에 한 번 꼴인 고국 방문, 1년간의 파리 안식년 휴가를 빼면 잠시도 섬을 떠난 적이 없다. 햇수로 25년째, 남한 땅의 6배 가까운 크기의 섬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6일 광주광역시 청소년 보호시설 나자렛집에서 그를 만났다.

가족 중 환자가 있어 잠깐 한국에 나온 수녀는 처음에는 인터뷰를 꺼렸다. 기자와 마주하고 나서도 말을 아꼈다. “사목활동을 성과 위주로 얘기하기가 부담스럽다”는 거였다. “평범한 사람, 왜 인터뷰하려 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마다가스카르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처럼 모험과 낭만이 넘치는 공간이 아니었다. 아프리카에서도 최빈국에 속했다. 2200만 인구의 70%가 하루 1달러 이하의 돈으로 연명한다는 통계도 있다.

 수녀는 “내가 교장으로 있는 초등·중학교 과정의 학교가 수도인 안타나나리보의 중심가에 있는데도 비만 오면 학교 주변이 온통 진창으로 변한다”고 했다. 비포장이어서다.

또 “밤에는 아직도 옷을 몇 겹씩 껴입고 자야 한다”고 했다. 낮에는 덥지만 밤이면 추운데 숙소는 난방이 전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수녀는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여러 채 세우고 아이들을 가르칠 선생들을 가르쳤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부임 초창기 현지인들과 의사소통이 안 돼 답답했던 점이었죠. 87년 로마에 도착해 선교사 수업을 받으며 이탈리아와 마다가스카르 공용어인 불어를 근근이 배웠는데, 정작 섬에서는 고유 언어인 말가시어(語)를 더 많이 쓰거든요.”

 그는 “돌이켜보면 그런 어려움도 선교사의 길 안에 당연히 포함된 것이었다”고 했다. “선교사는 언변이나 지혜로 일하는 게 아니라 나약함을 절감케하는 두렵고 힘든 일을 통해 스스로 춥고 겸손해져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했다. 어려움을 기꺼이 껴안아야 한다는 것. 그제서야 비로소 하느님의 힘과 의지가 드러난다는 얘기였다.

 현재 수녀회의 ‘살레시안’들은 전세계 90여 개국에서 1만4000명이 활동 중이다. 수녀는 살레시오 교육철학을 ‘예방교육(preventive system)’으로 요약했다.

단순히 아이들이 삐뚤어진 길로 빠지지 않도록 하는 차원이 아니다. 이성과 자애, 신앙을 바탕으로 청소년을 무한 신뢰하고, 또 그들을 지식 주입 대상이 아닌 교육의 동반자로 동등하게 대한다는 의미다.

 수녀는 “그런 철학에 따라 아이들을 교육과정에 참여시키는 게 우리 교육의 가장 혁신적인 부분”이라고 했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은 수녀로 성장하거나 나중에 교사가 돼 자신이 공부했던 학교로 돌아오곤 한다는 것. “그런 아이를 만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단지 아프리카에만 통하는 교육법이 아니리라.

 “하느님이 허락한다면 죽어 마다가스카르에 묻히고 싶어요. 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보낸 제2의 고향인 거죠. 선교사의 완성은 죽을 때까지 불가능한 것, 꾸준히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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