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경제 칼럼

이마트 직원들은 좋겠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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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심상복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

멀쑥하게 차려입은 신사인데 의혹의 냄새를 풍긴다. 정의의 사자를 자처하는 ‘배트맨’이 뒤를 밟는다. 신상을 파악해 보니 큰 사업을 하는 사람이다. 이런 경우 범법사실 몇 개쯤 들춰내기는 누워서 떡 먹기다. 역시 조사하니 다 나온다. 그런데 배트맨은 드러난 잘못으로 처리하려 하지 않고 모종의 사인을 보낸다. 신사도 바로 알아듣는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배트맨의 심기를 잘못 건드렸다간 국물도 없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이마트를 상대로 근로감독 실태조사를 벌였다. 2월 28일 “이마트가 1978명의 하도급 직원을 불법으로 파견 받아 근무시키고 있다”고 발표했다. 나흘 뒤 이마트의 항복문서가 전달됐다. 하도급업체 소속으로 전국 146개 매장에서 상품진열을 담당하는 1만여 명을 내달부터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이런 대규모 정규직 전환은 처음 보는 일이다.

 이마트는 올 초 직원들 성향을 뒷조사한 문건이 드러나면서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시민단체는 모기업인 신세계백화점의 정용진 부회장 등 경영진을 고발했다. 정 부회장은 이미 ‘골목상권 침해죄’로 막강한 세 기관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던 터였다. 국회가 지난해 대기업 빵집사업에 관한 국정감사를 하면서 증인출석을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자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벌금형으로 약식기소했다. 법원은 그 정도론 안 된다며 아예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같은 처지다. 이마트가 백기를 들던 날 롯데마트도 성의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도급업체 인력 1000여 명을 상반기 중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후 첫 행보로 중소기업중앙회로 가서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협력업체 관계가 껄끄럽던 대기업들이 긴장하는 건 당연했다. 담당 공무원들은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상생을 그르치는 대표적인 악덕 기업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현대백화점 정지선 회장도 떨고 있다. 더구나 지금은 정권이 막 출범한 시기다. 이때 잘못 보이면 5년이 피곤하다. 정규직 전환 발표가 이어질 것으로 보는 근거다.

 현재 전국의 비정규직은 600만 명에 근접한다. 전체 임금 근로자의 3분의 1 수준이다. 알다시피 비정규직이 이렇게 늘어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정규직은 경기가 나빠져도 해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을 쓰기는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은 우리나라 사업체의 99%, 전체 근로자의 88%를 차지한다.

일반적으로 중소기업 근로자는 대기업 직원에 비해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 같은 계약직이라도 대기업에서 일하면 영세기업에 비해 처우가 더 낫다는 말이다. 정부의 강력한 힘은 이마트와 롯데마트를 쉽게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10명 안팎 데리고 일하는 영세기업에는 어림없는 일이다. 다들 그들을 약자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번에 이마트 정규직원이 되는 이들은 박근혜 정부를 더없이 고마워할 것이다. 하지만 이름도 없는 작은 업체에서 일하는 수많은 근로자의 소외감은 누가 달래줄 것인가.

심 상 복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