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정권에…" 빈필 수치스런 고해성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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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해마다 1월 1일 오스트리아 빈의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에서 열리는 빈 필하모닉(빈필) 신년음악회. 세계 80개국 5000만 시청자에게 텔레비전과 라디오로 중계되는 유서 깊은 음악회다. 이제까진 1942년 초연이 정설이었다. 최근 들어 ‘암흑의 과거’가 밝혀졌다. 38년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과 합병된 후 빈필이 나치 정권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에게 헌정하기 위해 39년 첫 연주회를 열었다. 괴벨스는 이 음악회에 만족하며 빈의 낭만 이미지 구축에 활용했다.

 나치 패망 후에도 수십 년간 은폐된 빈필의 나치 부역 과거사가 10일(현지시간) 빈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다. 그동안 부분적인 추적·폭로가 있긴 했지만 빈필이 스스로 치부를 드러내는 건 처음이다. 로이터통신은 빈필의 고해가 독일·오스트리아 합병 75주년(3월 12일)을 앞두고 사회 전반의 자성 분위기에 맞춰 이뤄지게 됐다고 전했다.

 이번 공개 작업을 주도한 사람은 베르나데트 마이르호퍼 빈 대학 교수 등 3명의 역사학자다. 이들은 빈필 기밀 문건을 열람하고 클레멘스 헬스베르크 단장 등 관계자들을 인터뷰했다. 특히 미스터리로 남은 ‘시라흐 명예 반지 증정 사건’의 전모가 밝혀질지 관심이다. 빈필은 42년 나치 정권의 빈 총독 발두어 폰 시라흐에게 명예 반지를 증정했다. 심지어 시라흐가 전범으로 20년 복역 후 출소하자 원본과 꼭 같은 복제 반지를 선사하기도 했다. 빈필이 60년대까지 나치 부역을 반성하지 않았다는 의미라서 논란이 됐다.

 이번 공개 땐 당시 유대인 혈통이 문제돼 쫓겨난 13명 단원의 신원도 밝혀진다. 이들 중 5명이 강제수용소에서 죽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보고서 요약본을 입수해 “당시 빈필 단원 123명 중 62명이 나치 당원이었다”고 전했다. 빈필은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 때 강제 해산될 뻔했다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등 음악계 중진들의 노력으로 존속된 뒤 나치 병영 위문 공연 등을 했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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