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옥(71·전 국방부 차관) 평남지사는 1990년부터 2년간 8차례 이어진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측 군사분과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북측 군사분과위원장이 김영철 정찰총국장이었다. 당시 김영철은 인민무력부(우리의 국방부) 부국장을 맡은 소장급(우리의 준장) 이었다. 박 지사는 김영철과 2년간 거의 매달 만나면서 남북불가침 합의와 남북군사공동위 합의를 성사시켰다.
90년대 남북고위급회담 대표 박용옥 평남지사가 본 김영철
-가까이서 본 김영철은 어떤 사람인가
“북한에서 최고의 대남통이다. 대남 전략전술을 수십 년째 꾸준히 해왔다. 내가 20년 전 김영철과 장성급회담을 할 때 실무급으로 배석했던 소령·중령들이 장성이 돼 북한과 회담할 때도 김영철이 나왔다. 경험도 많지만 머리가 아주 빨리 도는 친구다.”
-어떻게 머리가 좋은가.
“과거 남북 간에 일어난 모든 사건을 다 알고 우리의 대북전략·협상행태도 다 꿰고 있다. 거짓말도 잘한다. 우리는 남북회담에 처음 나가는 군인이 많다. 회담 전에 자료를 공부하긴 하지만 몸에 밴 상태는 아니다. 그런데 김영철은 수십 년간 이 일만 해왔으니 그걸 밑천 삼아 장난을 친다. 예를 들어 회담 도중 북측에 ‘너희 인민군 총참모장이 몇 명이냐’ 물으면 ‘남측은 합참의장 한 명이지만 우리는 몇 명이다’고 대답한다. 그게 거짓말인데도 우리 측은 모른 채 넘어간다. 또 ‘과거에는 남북 간에 이랬는데 그런 사실을 똑바로 알고 나오라’고 공격한다. 우리 측은 따로 확인하기 전엔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결국 우리는 그런데 휘둘리지 않고 우리 할 말만 하고 회담장을 나오곤 했다. 그럼 김영철은 금방 상황을 파악하고 자기들끼리 대책을 세우더라. 그런 머리 굴리기가 능한 친구다.”
-공식회담 외에 사적인 만남도 했나.
“같이 식사도 하고 평양에선 술 한잔하면서 농담도 나눴다. 북한 대표들은 회담에서 얘기할 때와 개인적으로 얘기할 때가 다르다. 회담장에서 정치군사적인 얘기를 할 때는 김일성·김정일 우상화에 열을 올린다. 반면 개인적으로 만나면 자식들 얘기를 하는 등 우리랑 비슷해진다. 그럴 땐 우리 동포고 형제란 생각이 든다. 이런 이중성이 있기 때문에 ‘같은 민족’이란 생각에서 그 사람들을 설득시키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김영철이 직접 TV에 나와 협박한 걸 보면 북한의 도발이 임박한 것 아닌가.
“아니다. 도발한다는 선언이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협박, 공갈로 보인다. 북한은 언제 어디서 도발할지에 대해 선택권을 갖고 있다. 당장 도발할지, 우리가 느슨해진 틈을 노려 몇 개월 뒤 도발할지 속단할 수 없다. 우리는 늘 대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1990년대에도 북한이 ‘서울 불바다’ 운운하며 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때와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가 있다. 20년 전엔 북한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을 저지른다는 걸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북한은 우리 대통령 몇몇이 ‘어떤 경우에도 전쟁만은 안 된다’고 얘기하는 바람에 안심하고 도발을 자행하고 있다. 그 대통령들은 국가에 죄를 지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