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로빈 후드, 괴짜 독재자, 반미 선봉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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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5일(현지시간) 사망한 차베스는 중남미 좌파 국가 지도자의 대표주자다. ‘라틴 아메리카의 로빈 후드’라는 빈민층의 칭송을 받으며 4선에 성공해 14년 동안 베네수엘라를 통치했지만, 동시에 ‘괴짜 독재자’라는 평가를 들을 만큼 논란도 많았다.

 1954년 베네수엘라 서부의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차베스는 어린 시절부터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 영웅인 시몬 볼리바르를 우상으로 여기며 성장했다. 볼리바르는 베네수엘라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19세기 스페인에 맞서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75년 베네수엘라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군에 입대한 그는 80년대에 볼리바르의 이름을 딴 비밀운동 조직을 만들어 쿠데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92년 당시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대통령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감행한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갔고, 그는 2년 동안 수감됐다.

 지지자들의 끈질긴 구명 운동과 정권 교체로 사면된 차베스는 이후 제5공화국운동당을 창당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당시는 거대 양당이 번갈아 권력을 잡고 원유 생산으로 얻은 부를 착복하는 등 부패가 극심했다. 바로 이때 차베스는 스스로 반체제운동가를 표방하며 대중 앞에 나타나 오일머니의 재분배와 의회 해산 등 급진적인 공약을 내걸었다. 그는 98년 대선에서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됐다. 당시 그의 나이는 44세로 베네수엘라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그의 정치 역정은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2002년에는 반대파의 쿠데타로 47시간 동안 실각했고, 헌법 무력화 등에 반발한 군부가 차베스 편으로 돌아서면서 다시 직위에 복귀했다. 2004년에는 국민소환 투표가 있었지만, 이 역시 이겨냈다.

 차베스는 ‘반미의 선봉장’으로 유명하다. 아프간전과 이라크전 때 미국을 강도 높게 비난했고, 2006년 유엔 총회에서는 조지 W 부시 당시 미 대통령을 악마라고 불러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넘치는 카리스마로 20년 집권 가도를 연 차베스도 병마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차베스는 2011년 암 진단 이후 골반 부위에서 종양을 제거하는 등 네 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았고, 지난해 12월 암이 재발해 결국 합병증으로 숨졌다.

 한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성명에서 “베네수엘라 국민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다시 확인한다”며 “양국의 건설적 관계 발전을 위해 베네수엘라의 국익을 옹호한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은 “차베스 대통령은 걸출한 지도자였으며, 중국 인민의 좋은 친구였다”며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 우방궈(吳邦國)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각각 조전을 보내 애도의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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