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스포츠를 죽이는 승부조작의 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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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해준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강동희 감독까지? 도대체 왜? 믿을 수 없다. 검찰 수사가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프로농구 스타 출신 강동희(47) 원주 동부 감독이 승부조작과 관련해 검찰에 소환된다는 소식을 들은 농구인과 스포츠 팬들의 반응이다. 2011년 5월 프로축구 승부조작 파문을 시작으로 배구·야구·농구 등 프로 스포츠 4대 메이저 종목이 모두 홍역을 치르게 됐다. “올 게 왔다” “도대체 깨끗한 곳이 어디냐”며 분노를 넘어 체념하는 팬도 있다.

 승부조작을 뿌리 뽑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스포츠 베팅이 있는 한 승부조작을 꾀하는 세력이 있고, 유혹에 넘어가는 선수·심판·감독이 생긴다. 승부조작에 끌어들이는 수법은 알고도 당할 정도로 교묘하고 집요하다. 협박·회유·읍소 등 갖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접근은 동료·선후배 등 평소 잘 아는 사람을 통해 이뤄진다. 승부조작에 휘말렸다가 천신만고 끝에 무죄 판결을 받은 축구 선수 이정호(32·부산 아이파크)는 “잘 아는 동료가 ‘조폭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다. 승부조작을 못 하면 나와 가족이 죽을 수도 있다. 제발 한 번만 도와달라’며 부탁하고 무작정 돈을 놓고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날 끌어들이기 위해 꾸며낸 거짓말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발을 담근 뒤 한 번, 두 번 승부조작을 하고 나면 점점 대담한 요구를 한다. 조폭의 협박과 구타로 이어지기도 한다.

 강동희 감독 조사와 관련해 프로농구연맹(KBL)은 “검찰의 공식적인 조사가 진행될 때 명확한 진상 규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할 것이며 수사 결과에 따라 엄중한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일단 검찰 조사를 지켜보겠다는 얘기다. 이런 수동적인 태도로는 승부조작을 발본색원할 수 없다. 자발적으로 치부를 드러내고 환부를 도려내겠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적당히 넘어가면 승부조작이 만연할 수도 있다.

 승부조작에 가장 현명하게 대응한 건 프로축구였다. 승부조작 사건이 불거진 뒤 불과 6일 만에 1300여 명의 선수와 관계자를 모아 워크숍을 열고, 자진신고를 유도했다. 서약서를 받고 교육도 강화했다. 선수들의 은행 계좌를 조회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했다. 승부조작 예방을 위해 암행감찰을 하기도 한다.

 승부조작은 선수 자신이 흘려온 땀은 물론 그 종목에 입문하려는 유소년의 꿈까지 짓밟는 행위다. 스포츠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범죄다. 스포츠의 가치를 지키려면 승부조작 세력에 맞서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사법당국은 전담 수사처를 만들어 스포츠계 독버섯을 뿌리 뽑아야 한다.

이 해 준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