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한수] '돌부처'의 인내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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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이 말하는 그대로 바둑에서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불과 불이 맞부딪칠 때 초연히 말머리를 돌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형세를 보는 혜안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장면1=이창호9단과 후야오위7단이 격돌한 농심배 13국. 흑의 이9단이 1로 찌르자 백의 후야오위는 손을 빼 2로 두었다. 백2로 인해 흑▲ 5점이 사망했다. 이제 흑은 분노의 칼을 뽑아들어 돌파하고 가를 차례인데 이9단의 다음 한수는 어디였을까.

#장면2=이9단은 돌파하는 대신 흑1로 막았다. 인내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한수. A로 움직이지 않은 흑5는 더더욱 냉정해 수많은 해설자 중에서 이 수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9단은 1과 5로 두번을 꾹 참았다. 백을 응징하는 대신 6으로 다 살아가게 했다. 대신 자신은 흑7까지 좌변에 대가를 건설했다.

흑▲들이 잡혀있는 이 상황은 곧 백의 철벽이 곁에 도사리고 있음을 의미한다.흑은 결코 감정적으로 싸워서는 안되는 상황이었다.

흑1과 5, 이 두 수로 흑은 대번에 우위에 섰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길을 보여줬다. 이후 대혼전이 이어지기도 했지만 결국 좌변의 견고함이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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