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열광한 애니메이션 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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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고 싶다!
추억의 애니메이션과 만화의 고전들

지금 보면 그저 그런 테리우스가 왜 그렇게 멋있어 보였을까. 밍키의 요술방망이로 나도 한번 성숙하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변신 해봤으면…하는 바람도 있었다. 어린 시절, 종이인형을 가지고도 살아 있는 것처럼 놀았고, 땅에 이층집을 그려 놓고 층계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부잣집에 대한 희망을 가졌던 것처럼, 어린 시절의 상상력은 지금의 열 배, 백 배쯤은 될 것이다. 그런 상상력에 부채질을 하는, 다시 한번 우리들을 어린시절의 감성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그때 그 시절 만화의 세계를 느껴보자.


푸른 하늘 저 멀리~~ 새 희망이 넘실거린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했던 만화가 바로 '코난'이다. 런닝 셔츠에 반바지 입고 창하나 들고 달려 다니며 온갖 활약을 다 하는 그 아이를 보면 그냥 신난다고 할까. 주인공이 참으로 못생겼다고 생각한 '은하철도 999', 요술 방망이 하나로 멋지게 변신하며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밍키와 백마탄 왕자님을 기대하게 만들었던 '캔디', 그리고 시간의 멈춤이라는 대단히 매력적인 일을 벌이던 '이상한 나라의 폴'에 아이들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 '빨강머리 앤', 빨간 볼을 가진 귀여운 소녀 '알프스 소녀 하이디'까지 우리가 즐겨 보던 만화는 참으로 많았다.

과거의 노래를 들으며 그 당시의 추억을 떠올리듯 어린시절에 보았던 만화영화를 생각하면 그냥 즐거워진다. 광고가 끝나고 노래가 나오면 신나게 따라 부르고, 2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진행되는 만화 속 들판을 달리고, 우주를 떠다니며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다시 봐도 좋은 우리 어린 시절의 애니메이션들.

*멋진 연인을 꿈꾸게 했던 캔디 캔디


‘넌 테리우스가 좋아? 아니면 안소니가 좋아?’ 어린 시절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질문 중 하나였다. 영원한 우리의 연인 테리우스냐, 아니면 따뜻한 미소를 가진 안소니냐, 그것은 풀 수 없는 숙제처럼 우리에게 행복한 고민을 남겼다.

주근깨 투성이 고아 소녀가 입양되어 간 곳에서 못된 남매가 매일 괴롭히기 일쑤였지만, 장미 넝쿨이 풍성한 집에 사는 아드레이가의 세 남자와 마음씨 좋은 털보아저씨 때문에 캔디는 그럭저럭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넌 우는 얼굴보다 웃는 얼굴이 예뻐” 만화에서, TV 드라마에서 수 없이 나왔던 이 대사가 안소니의 대사라는 것을 아시는지…또, 캔디의 기숙사 방에 밤에 피투성이가 되어 숨어 든 테리우스를 치료해주는 왠지 은밀한 장면은 많은 소녀들의 가슴에 반항아를 사랑하는 이유 중의 하나인 모성본능을 일깨워 주었다.

캔디가 만났던 남자들, 그리고 터프한 반항아의 전형이 되어버린 테리우스. 그다지 예쁘지 않은 소녀에게도 이렇게 멋진 남자들이 나타날 수 있다는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주범이 되어버린 캔디. 캔디에게 닥쳤던 불행, 그리고 그 때마다 그녀를 구해주었던 남자들. 그 상황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짜릿한 기분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1977년 MBC에서 '들장미 소녀 캔디'라는 제목을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고,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천하무적 발가락의 힘, 미래소년 코난


미래 소년 코난의 작가 미야자키 하야오는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큼 유명한 작가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 '빨강 머리 앤' 등 우리가 TV에서 보았던 작품과, 이번에 개봉되는 '이웃의 토토로' 그리고 '천공의 성 라퓨타'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알렉산더 케이의 '남겨진 사람들'을 원작으로 한 공상과학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은 세계대전으로 인류가 몰락한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구상의 대륙은 쪼개져 바다로 가라 앉고, 남겨진 소수의 사람들이 섬에서 살아가고 있다.

할아버지와 함께 부서진 로켓 속에서 살고 있는 소년 코난 앞에 어느날 꿈의 섬 ‘하이하바’에서 온 라나라는 소녀가 나타난다. 라나는 하이하바의 태양열 에너지 권위자 라오 박사의 손녀로 강력한 태양 에너지의 비밀을 빼앗기 위한 인더스트리아 사람들의 추격을 받는다.

'미래소년 코난'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많지만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탑에 갇혀 있는 라나를 구하기 위해 아무 것도 없는 철탑을 맨발과 창 하나만 가지고 ‘다다다다’ 뛰어가 운동신경과 발가락의 힘 만으로 라나를 구출하고, 구출한 나나를 안고 떨어질 뻔한 위기에서도 발가락으로 끝까지 매달려 있던 장면이 있다. 물론 만화 이기에 가능한 것이지만, 코난이 힘을 쓸 때 우리는 같이 ‘끙’하고 힘을 쓰며, ‘어~~어~어’하며 간신히 라나를 구출해 낼 때는 모두 같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묵사발’이라고 불렀던 포비도 너무나 그리운 캐릭터다.

전쟁 이후의 암울한 세계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코난. 기계 문명의 신봉자들에 의해 갇혀 있던 사람들은 코난의 활약으로 모두 탈출해 이상적인 공동체의 삶을 살기 위해 섬 하이하바로 가고, 새롭게 떠오른 대륙에서 코난과 라나도 앞으로의 희망을 기대한다.

‘푸른 하늘 저멀리~~ 새 희망이 넘실거린다’라는 노래 가사처럼 열심히 달려다니는 코난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희망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만화다.

*무엇이든 가능한 요술 방망이가 갖고 싶다! 밍키


원래 사람들 가까이 있었던 꿈의 나라 페나리사나. 하지만 사람들이 점점 꿈과 희망을 잃어 가자 그 나라도 점점 지구에서 멀어지고 이를 안타까워한 왕과 왕비는 그들의 딸을 지구에 보내 사람들에게 따뜻한 꿈을 심어주고자 한다. 밍키는 평범한 집의 딸로 태어나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마다 요술봉을 이용해 자유자재로 변신,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나도 저런 요술봉이 있었으면..’했던 여자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요술봉을 휘두르며 몇바퀴 휘리릭~ 돌면 뒷모습의 환상적인 누드가 나오고, 예쁜 여자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 순간을 놓칠 새라 눈이 뚫어져라 보면서 빠져들어갔다.
밍키의 활약상을 신비의 거울 속을 통해 보고 있는 레나리사나의 왕과 왕비 또한 재미있는 캐릭터이다. 땅딸막하고 코믹한 왕은 거울을 들여다 보면서 ‘그렇지! 그렇지! 역시 우리 밍키야’하고, 갸냘픈 소녀적 감성을 가진 왕비는 ‘에고.. 우리 밍키가..’하면서 눈물을 훔치기 일쑤였다.

물론 그 이전에 '꽃천사 루루'라는 만화가 있었다. 역시 어려운 문제에 닥쳤을 때 어딘가에 피어있는 무지개 꽃을 찾아 주문을 외우는 것이다. 그 이후에도 샛별공주를 비롯한 변신 공주 이야기는 언제나 여자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우주로 날아가 버린, 요술나라 꿈나라’ 가 정말 있는 지 없는 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요술 같은 일이 가끔 삶에도 일어나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도 생각한다.

*우주를 나는 꿈, 은하철도 999


어린 시절의 내게 있어, 아니 그 누구든지 간에 죽음이란 대단히 두렵고 겁나는 일이었다. 죽음이란 것에 대한 이해도 없을 뿐더러, ‘죽어서 답답한 땅 속에 갇혔다가 다시 살아나면 어떻게 하지’라는 어이 없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티켓을 가지고 선망하는 기차여행-그것도 우주의 가지 각색의 별들 사이로-긴 여행을 떠나는 철이가 한없이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결국 영원한 생명을 얻은 기계 인간들의 모습이 인간과 달리 커다란 기계 눈 같은 것을 달고 있는 것을 보고, 너무 실망해서 저렇게 생길 바에는 차라리 영원한 생명 따위 얻지 않는 게 낫다라는 생각도 했다.

'은하철도 999'가 재미 있는 이유 중 하나라면 역시 우주에 흩어져 있는 여러 별들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모습들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 별에서는 기계가 모든 일을 대신해서 사람들은 집을 뚫고 나갈 정도로 뚱뚱해져 버린 경우도 있었고, 태양이 없는 별의 어둠 속에서 사는 사람들, 그리고 화산 폭발로 용암 속에 잠들어 버리는 사람들 등, 실로 수 많은 사람들의 삶이 있었고, 그런 여행을 하는 철이를 보면서 우리는 지구라는 별이 그래도 행복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인간의 삶에 대한 반성 아닌 반성도 하곤 했다. 결국 철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들의 방탕과 괴로움을 보고 기계 인간이 되기를 포기하고 만다.

그 옛날 우리를 설레게 했던 그 많은 이야기들을 가만 생각해 보면 요즈음 방영되고 있는 어린이 만화에 비해 조금쯤 서정적이고 철학적인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어린 아이들에게 벅찬 내용일지 모르지만 오히려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에게 어울릴 수도 있다. 나도 그랬고, 또래의 사람들은 그런 만화를 보면서 우주를 상상하고, 아이들다운 꿈을 꾸기도 했다. '포켓몬스터'류의 캐릭터 대항전도 재미있지만 그 보다는 아이들의 감성을 키워줄 수 있는 만화가 많이 방영되었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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