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통업체 매장 소형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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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미식 축구경기장 네 개를 합쳐 놓은 것과 맞먹는 1만8천㎡의 거대한 매장 면적. 창고형 선반 위에 천장까지 쌓인 10만 개의 다양한 상품 품목들.

미국의 대형 유통업체인 월마트가 '수퍼센터'라고 부르는 대형 점포의 평균적인 모습이다. 한 장소에서 무슨 물건이든 구입할 수 있는 '원스톱 쇼핑형' 점포다.

그러나 미국 유통업체들은 최근 매장 소형화쪽으로 선회하고 있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23일 보도했다. 소비자들이 이젠 필요한 물건을 바로 찾아내길 원하는 데다 큰 매장을 만들 만한 부지를 구하기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월마트는 기존 대형 매장 크기의 5분의 1에 불과하고 판매 품목 수도 기존 매장의 4분의 1인 2만4천개 정도 소규모 점포를 잇따라 개설하고 있다.

가정용품 소매업체인 홈 디포와 장난감 체인점 토이저러스 등 잘 나가는 유통업체들도 거대한 창고 형태의 기존 매장을 좀 더 작고 안락한 분위기로 바꾸고 있다.

토이저러스는 점포당 60만달러 이상을 쏟아 부어 전체 매장 7백3곳 가운데 절반 이상을 이미 뜯어 고쳤다. 매출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점포 크기를 줄이는 한편 천장까지 포개져 있던 각종 인형.장난감을 제조업체.유형별로 일목요연하게 분류하는 등 매장을 재설계했다.

유통업체들이 소규모 점포를 확대하고 있는 것은 더이상 넓디넓은 거대 매장에서 헤매고 싶지 않다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간파했기 때문이다.

바쁜 쇼핑객 입장에서는 대형 매장이 다리품만 팔게 하고 오히려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텍사스 A&M 대학 유통연구소의 데이비드 지먼스키 소장은 "쇼핑객들이 자기 시간을 존중해 줄 것을 업체들에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형 점포 위주인 약국 체인업체 월그린은 고객들이 단 6분 안에 원하는 상품을 골라 점포에서 나갈 수 있다고 자랑한다. 결국 쇼핑 속도가 고객들에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또 부지(敷地)문제도 매장 소형화를 유도하고 있다. 지방 소도시의 경우 경제성 측면에서 대형 매장을 세우기가 버거운 데다 아예 그럴 만한 부지가 부족한 경우도 많다.

판매 품목 수가 준다고 매출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소비재 제조업체인 프록터 앤 갬블의 연구에 따르면 매장에서 판매 품목 수가 줄어들면 오히려 판매량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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