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경제] 반도체가 왜 우리 경제 좌우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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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라는 말 잘 아시죠. 한국 국민이라면 어린 학생.주부.노인 할 것 없이 누구나 아는 말일거예요. 물론 '반도체가 뭐냐'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하기는 어렵더라도 말이에요.(이 부분은 따로 설명해줄께요).그런데 왜 이렇게 반도체가 우리에게 친숙하게 됐을까요.

그건 반도체가 우리나라 경제를 먹여살리는 젖줄이 됐기 때문이에요. 이제 반도체 없이 한국경제를 말할 수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왜 그런지 한 번 알아볼까요.

◇ 한국경제의 젖줄=우리나라 산업과 경제에서 차지하는 반도체의 위상을 먼저 수치로 한번 보도록 하죠.

지난해는 반도체 업계에 악몽 그 자체였어요. 우리나라가 D램 1위국이라는 건 아시죠. 그런데 2000년 7월엔 한개에 19달러하던 128메가 D램이라는 제품이 지난해 10월엔 1달러 아래로 뚝 떨어졌어요.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 수출한 전체 상품중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율이 9.5%나 됐죠. 자동차(8.8%)를 간발의 차로 제치고 1등 자리를 지켰어요. 1992년부터 지금까지 10년동안이나 수출 1등을 차지한 거예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참 대단하지요.

우리나라에서 산업생산에서 반도체는 1990년 3.8%였지만 2000년에 26.2%로 늘었어요. 메모리 반도체 값이 한개에 평균 1달러 오르면 연간 수출 20억달러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고, 반도체 생산이 10%만 줄어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0.9%포인트나 떨어질 정도라고 해요.

이런 수치가 아니더라도 반도체가 우리 전체 산업 경기를 오르게도 하고 내리게도 하는 신호등이 됐다는 증거는 여기 저기서 볼 수 있어요. 한 예로 요즘 반도체 값이 좀 오르니까 곧바로 증시가 달아오르는 걸 보세요.

이렇게 설명하면 어떨까요. 21세기의 경제 구조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뀐다는 이야기 자주 듣지요. 쉽게 말하면 앞으로 세계 경기를 이동통신.인터넷 같은 정보기술(IT)산업이 주도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IT산업 경기가 좋은지 여부는 반도체 수요가 많고 적음에 따라 곧바로 가려져요. 가령 D램 물량의 70% 정도를 갖다 쓰는 PC가 지난해 20년만에 처음으로 판매가 확 줄어 마이너스 성장을 했으니 반도체 값이 곤두박질친 것은 당연하지 않겠어요.

하이닉스가 이달 초에 일부 반도체 값을 30% 올린다고 발표하자 선진국 주가까지 덩달아 뛴 것은 반도체의 위력을 잘 드러내는 사례였지요.

요즘 반도체 값은 석달째 오름세예요.연말연시엔 상승폭이 더욱 커졌어요.

국내외 경기회복에 대한 장밋빛 기대감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번지는 것 역시 반도체의 위력입니다.

◇ 전쟁 중인 세계 반도체 업계=한국경제가 이처럼 반도체 경기에 목을 매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기 때문이예요.

삼성 같은 대기업들이 일찌기 이 사업을 유망하게 보고 1980년대 초반부터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투자비를 쏟아부었는데 결과가 좋았던 것이지요.

삼성전자는 수년째 세계 최대 D램 반도체 업체로 군림하고 있고 하이닉스도 어렵긴 하지만 3위에 올라있어요.

두 회사 물량을 합쳐보면 한국은 전세계 D램의 40% 가까이를 대는 메모리 반도체의 종주국임을 알 수 있어요.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2위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부쩍 힘을 내고 있어요. 일본 도시바의 미국 D램 공장을 인수한 데 이어 자금난에 처한 하이닉스의 D램 사업을 통째로 가져가려는 협상을 벌이고 있지요.

전세계 대형 반도체 업체들은 제각각 짝짓기를 통해 생존하겠다고 살벌한 생존게임을 벌이고 있지요. '반도체 3차 대전'이란 말도 나와요.

1980년대 일본 업체들이 미국과 힘을 겨뤄 메모리 반도체 1위 국가자리를 차지한 일을 1차대전, 삼성전자가 일본업체를 누르고 1990년대 중반 정상에 올라선 일을 2차대전이라고 한다면 요즘 상황은 3차대전에 해당한다는 거지요. 미국이 반격에 나섰고 대만.중국 등지의 복병이 호시탐탐 사업기회를 엿보는 새로운 국면이라는 뜻이예요.

반도체 업계가 이렇게 덩치불리기에 나서는 이유를 설명한 말로 '무어의 법칙'이라는 게 있어요.

과거 경험을 보면 메모리 반도체 기술은 1년 반마다 메모리 용량이 두배로 늘어날 정도로 빠르게 진보한다는 거예요. 웬만한 기술과 설비.자금력으론 이에 필요한 연구개발이나 대량생산을 감당할 수 없지요.

그래서 다른 업체를 쓰러뜨리거나 아니면 합쳐서 과잉생산을 줄이고 기술을 향상시키는 길 밖에 도리가 없게 됐다는 겁니다.

◇ 메모리 비중 너무 커=한국이 반도체 강국이지만 메모리 이외의 반도체에는 아직 취약하다는 게 걱정이죠.

미국은 최고의 비메모리 반도체 강국이죠. 비메모리는 대개 메모리보다 훨씬 뛰어난 설계 기술이 필요하고, 품목이 워낙 다양해 경쟁업체가 적고 수요는 꾸준해 시장이 더 넓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기업들도 비메모리 사업을 늘리자고 하고 있는 거예요.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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