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들라, 잊어라… 2009년처럼 승리는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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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전 패배는 소맥(소주+맥주) 폭탄주 한잔 마시고 털어버렸어요.”(류중일 대표팀 감독)

 “태극기에 먹칠은 하지 않겠다. 치고받고서라도 싸워 이기겠다.”(투수 송승준)

투수 윤석민이 2일 네덜란드전에서 2회 첫 실점을 한 뒤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다. [타이중(대만)=이호형 기자]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은 3일 오후 대만 타이중 타이중구장에서 훈련을 실시하며 4일 호주전과 5일 대만전을 준비했다. 타이중구장으로 걸어 들어오는 선수들의 표정에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결연한 각오가 엿보였다. 2일 네덜란드에 충격적인 0-5 완패를 당한 대표팀의 화두는 ‘힐링’이었다.

 류중일(50) 한국 대표팀 감독은 이날 훈련에 앞서 선수들을 불러모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하자. 실패하면 배울 것이 많다. 어제 패배는 앞으로 많은 공부가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

 류 감독은 취재진에게 “네덜란드전은 생각 뒤로 밀어냈다. 호주전에는 타순을 조금 조정하겠다. 최정이 평가전 때 컨디션이 나빠 네덜란드전에서 9번으로 냈는데 잘 치더라. 6번 정도로 올릴 생각”이라며 “이대호·김태균·이승엽 3명의 타격감이 비슷하다. 왼손 투수라고 무조건 이승엽을 벤치에 둘지는 고민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호주전 선발투수로는 송승준(33·롯데)이 유력하다. 송승준은 “탈락하든 올라가든 마지막 경기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라며 “구위가 나쁘든, 타격감이 나쁘든 그걸 신경쓰면 안 된다. 치고받고 부딪쳐 호주와 대만을 모두 이기겠다. 태극마크를 달고 먹칠하는 것은 안 된다”면서 투지를 보였다.

 씩씩하게 말했지만 류 감독과 선수들 모두 네덜란드전 완패의 충격에서 완전히 헤어나오지는 못한 것 같았다. 훈련장에 비까지 내려 분위기는 더 처졌다. 그래도 선수들은 예정된 훈련을 끝까지 마치고 숙소로 돌아갔다.

 ◆김인식·봉중근의 조언

김인식 전 대표팀 감독(左), 봉중근(右)

야구 대표팀은 2009년 제2회 WBC에서 ‘도쿄 대참사’를 극복한 바 있다. 1라운드 2차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2-14, 7회 콜드게임패를 당한 대표팀은 곧바로 반전에 성공했다. 중국에 14-0, 콜드게임승을 따낸 뒤 일본과의 순위결정전에서 1-0 완봉승으로 설욕했다.

 일본과의 두 번째 경기 선발로 나선 봉중근(33·LG)은 5와3분의1 이닝 무실점으로 역투했다. 그는 이후 일본과의 2라운드 경기와 결승전에서도 호투하며 ‘봉중근 의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왼 어깨 부상 때문에 이번 대회에 참가하지 못한 봉중근은 “WBC에 처음 나온 투수가 많아 부담감을 느끼는 것 같다. 어려울 때일수록 ‘즐기자.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봉중근은 “일본에 콜드패를 당한 뒤 양상문 코치님께 ‘제가 나가서 복수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다들 일본전에 안 나갔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고, 나도 걱정은 됐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자 오히려 부담감이 줄었다. 서로 ‘다음엔 내가 나가서 던지고 싶다’고 말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김인식(66)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은 “일본전 대패는 치욕적이었다. 그래도 선수들에게 한 가지만 당부했다. ‘0-1로 지나 0-10으로 지나 똑같은 1패다. 한 번 진 거다.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고 떠올렸다.

 김 위원장은 “지금 우리 대표팀에 하고 싶은 얘기도 똑같다. ‘네덜란드 패배는 잊자. 다시 시작하자’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모두 지금 상황을 잘 알고 있다. 긴 말은 필요 없다. 곁에서 그들을 응원해 줄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1회 대회에서 일본에 2승1패로 앞섰던 대표팀은 2회 대회 첫 일본전에서 대패하며 큰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일본 킬러’ 김광현(SK)이 1과3분의1 이닝 동안 8실점이나 했던 게 뼈아팠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냉정을 되찾으며 선수단을 다독였다. 또 핵심 전력이 아니었던 봉중근은 호기 좋게 앞에 나섰다. 결국 대표팀은 대승보다 더 짜릿한 1-0 승리를 거뒀다.

한용섭·김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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