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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페북 ‘좋아요’ 버튼, 정말 좋아서 누르나요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포털 네이버의 ‘지구 멸망’ 소재 옴니버스 웹툰 중에 윤현석 작가의 ‘지구종말 D-1 흔한 네티즌의 하루’라는 단편이 있었다.

거대 유성이 지구로 충돌하기 하루 전에도 주인공은 습관적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를 딸각거린다. 페이스북에 들어가니 친구가 올린 글이 보인다. “고작 유성 따위에… ㅋ 아 ㅠㅠ 진짜 싫다… 너무 슬프다 ㅎㅎ” (절망적인 상황인데도 ㅋ와 ㅎ는 들어간다.) 그 글에는 3명이 ‘좋아요’를 눌렀다고 돼 있다. 주인공은 어이없어 댓글을 단다. “다 죽게 생겼는데 좋긴 뭐가 좋아?” 그러자 이 댓글에도 3명이 ‘좋아요’를 누른다.
이 웹툰을 보고 많이 웃었다. 그리고 많이 뜨끔했다.

나부터도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와 SNS 댓글에 ㅎㅎ와 ^^를 습관적으로 남발하고 있다. 이런 것이 없으면 말이 너무 딱딱하거나 차갑게 보일까 봐 그런다. 하지만 웬만한 경우에는 문장을 좀 더 다듬고 단어를 좀 더 세심하게 골라서 이모티콘 없이도 해결할 수 있다. 그럴 시간이 없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니까, 간편한 이모티콘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현대 한국인의 속도 강박증이 작용하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좋아요’도 마찬가지다. 지인의 글이나 사진을 잘 봤는데 관련해서 별로 할 말이 생각 안 나면 그저 ‘좋아요’ 버튼을 눌러 쉽게 해결한다. 물론 그냥 좋으면서 정말 할 말이 없는 경우도 간혹 있다. 하지만 대개는 내가 느끼는 것을 정리해 글로 옮길 시간이 없어서, 또는 솔직히 귀찮아서 ‘좋아요’를 클릭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것과 미묘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을 글로 묘사하는 능력이 퇴화하는 것 같다. 어쩌면 저 웹툰처럼 비탄의 글에도 ‘좋아요’ 클릭으로밖에 공감을 표현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댓글에 달랑 ㅠㅠ만 단다든지.

30여 년 전 카네기멜런 대학의 스콧 팔만 컴퓨터과학 교수가 처음으로 이모티콘 사용을 제안했을 때도 이런 우려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컴퓨터과학과의 인트라넷에서 농담 글이 진담으로 오해되어 싸움이 나는 것을 보고, 미소 이모티콘 :-)을 고안해 농담 글에는 그것을 붙이자고 했다. 그 후 이모티콘 사용이 확산되자 영문학자들은 글만으로 감정의 뉘앙스를 표현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에 대해 팔만은 수많은 네티즌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팔만조차도 최근 10년간 활성화된 그림 이모티콘에 대해서는 “상상력을 저해한다”며 우려했다고 한다. <중앙일보 2012년 7월 21일자 25면 ‘이걸 다 알면 당신도 신세대’ 참조>

위부터 카카오톡의 싸이 이모티콘과 기본 이모티콘, 네이버 라인 스티커.

유료로 제공되는 그림 이모티콘은 카카오톡 같은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의 중요한 수입원이다. ㈜카카오는 지난달 싸이 캐릭터로 제작된 움직이는 이모티콘 ‘오빤 월드스타일~!’을 출시했다(사진). 세계 시장을 겨냥해 6개 언어로 제공된다고 한다. 네이버도 자체 모바일 메신저를 위한 커다란 이모티콘 ‘라인 스티커’의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왜 내 감정을 표현하는 데 돈까지 줘 가며 싸이의 얼굴을 빌려야 한단 말인가? 감정을 섬세하게 글로 쓰는 것도, 그걸 읽는 것도, 시간이 걸리고 귀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가지 유형의 이모티콘으로 서로 신속하게 느낌을 전달한다. 그러면서 감정은 이모티콘을 따라 단순하게 도식화되고, 의사소통은 얄팍해진다.

그렇다면 차라리 영상통화라도 해서 얼굴의 표정과 말의 억양으로 감정의 뉘앙스를 섬세하게 전달하는 것은 어떨까? 하지만 그것은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를 온전히 드러내는 것은 싫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바일 메신저와 SNS 같은 네트워크로부터 완전히 자신을 숨기고 은둔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고독은 두렵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네트워크상의 인간관계에서 자신을 다 드러내기 싫어하고 얇은 막을 치고 싶어 하면서도 남들의 관심을 갈구한다. 그래서 오늘도 품앗이하듯 누르는 페이스북의 ‘좋아요’ 엄지손가락은 치켜 올라가고, 모바일 메신저의 캐릭터 애니메이션 이모티콘은 나 대신 과장된 표정을 날리는 것이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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