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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이정희에 난 안보내, 유시민 은퇴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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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지난 달 27일 당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개혁과 연대의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민주통합당 문희상(68) 비상대책위원장은 바빴다. 지난달 27일 오후 3시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난 문 위원장은 점심도 거른 채 여섯 번째 일정(중앙SUNDAY 인터뷰)을 소화했다. 그전엔 ‘5·4 전당대회와 당 대표 선출 룰’을 확정지은 중앙위원회 참석이었다. 임기 50일째인 문 위원장은 “대선 평가 백서(白書)와 당 혁신 청사진(blue print)을 내야 하는데, 혁신 하나만큼은 제대로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당 혁신방향에 대해서는 중도·개혁노선으로 돌아갈 뜻을 명확히 했다. 그는 “아직도 독재·반독재, 좌우 등 이분법적 구도에 빠져 있는 건 군사문화의 잔재”라고 주장했다. 또 연평도에서 비대위 회의를 했던 일을 거론하며 안보를 강조했다. “우리 당은 안보를 소홀히 하는 집단이 아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등 북의 군사도발에 대응한 건 역사상 김대중(DJ)·노무현 정권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대선 때) 새로운 색깔론, 변종 색깔론에 당했다”는 것이다.

문 위원장은 12·19 대선 패배 이후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됐다. 116일 임기 동안 박근혜 정부의 출범 과정에서 여야 관계의 한 축을 맡게 된다. 박 대통령과는 16대 국회 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활동을 같이 하고 열린우리당 의장 시절엔 정치적 파트너로 일한 경험이 있다. 그는 “동료 의원일 때 외유내강(外柔內剛)·유능제강(柔能制剛)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는데 지금도 변함없다”며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침도 잊지 않았다. “대통령이 된 뒤 소통하지 않고 ‘외딴섬 공주’로 전락하면 곧바로 망하는 길”이라고 했다.

문 위원장은 2011년 12월 민주통합당 창당 이후 일곱 번째 당 대표다. 이에 대해 문 위원장은 “당이 재·보선과 총선·대선에서 연거푸 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차기 주자감이 없다는 비판에 대해선 “미국의 빌 클린턴과 지미 카터 전 대통령도 조그만 주(州)의 주지사였다. 우리도 8명의 시장·도지사를 갖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송영길·안희정·이광재도 훌륭한 지도자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 바깥만 보고 있으면 안 된다. 다음 대선 땐 내각제가 되지 않는 이상 절대 안 놓친다”고 덧붙였다. 대담은 이양수 중앙SUNDAY 편집국장이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대선 후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봤나.
“북한 핵실험 후 3자 회동(2월 7일) 때 만났다. 그날 외부에 공개된 부분은 1%밖에 안 된다. 99%는 ‘대화하고 소통하세요. 그거 안 하면 큰일 납니다’는 내용이었다. 제1소통의 대상은 측근이고 다음이 여당, 야당 순인데 야당과의 대화를 빼놓으면 안 된다고 했다. 야당과 한 번만 대화하면 (박 대통령을 찍지 않은) 48%와 대화하는 거라는 상징성이 있다. 그 다음 순서가 언론이다. 남북 관계도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했는데 (박 대통령은) 묵묵부답이더라.”

-이른바 ‘박근혜 인사 스타일’을 어떻게 생각하나.
“인사가 만사라는데 지금 ‘망사(亡事)’가 되고 있다. 초장 인사가 5년 임기를 좌우하는데 이렇게 하면 큰일 난다. 허태열 비서실장이 빨리 인사위원장을 맡아 (인사를) 걸러야 한다. 옛날 수첩만 보고 ‘TV 보니 누가 괜찮더라’ ‘누가 누굴 추천하더라’ 이렇게 인선하면 한계가 있다.”

-인사청문회, 정부조직개편안을 무기로 야당이 국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데.
“인사청문회에서 불법·비리가 드러나면 우리는 당연히 동의할 수 없다. 특정 인사를 지목해 그만두게 하려는 건 아니다. 정부조직법 개정은 방통위 기능 이관 외에 다 양해할 수 있다. 언론의 공정성ㆍ자율성 확보는 기본이다. 그걸 슬쩍 옮겨서 좌지우지하겠다는 의도가 읽히는데 야당이 두고 볼 수 있나.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청와대) 비서관 인선이나 대통령실 직제면 상관없다. 하지만 이건 여야 합의를 거쳐야 하는 법률 개정안의 문제고 국회의 일이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될까.
“대화 국면으로 간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의 실패를 너무 뼈저리게 느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박 대통령은) 타이밍을 절대 놓치지 않을 사람이다. 3자 회동 때 내가 DJ·노무현 정부 때 북·미 관계의 진척 상황과 그 선에서 해야 할 일 등 ‘할 수 없는 얘기’까지 모두 해 줬다. (박 대통령이) 눈빛으로 동의하는 듯 했다. ‘정권 초반에 북한이 우리를 다루려 할 텐데 거기에 빠지면 안 된다. 거기 볶이면 5년 내내 가게 된다’고도 조언했다. 그 부분에서도 금방 고개를 끄덕이더라. 남북관계가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4월 재·보선은 어떻게 보나.
“국회의원 지역구가 서너 군데이고 나머지는 군수ㆍ구청장이다. 우리로선 다 떨어져도 본전인 지역이 많지만 몇 군데는 승리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안철수씨의 신당 창당론이 돌아다닌다.
“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순 없지만 어리석은 일이다. 악마의 유혹을 견뎌야 한다. 지난해 대선 전 송호창 의원이 안철수 캠프로 갔을 때가 아슬아슬한 유혹이었다. 그런데 ‘가면 망한다’는 걸 민주당 의원들이 다 안다. 20명쯤 가야 문패라도 달 텐데 (의원들이) 안 간다. 민주당은 60년 전통의 문패가 있어서 없어지려야 없어질 수 없다. 제3신당이 되면 크든 작든 (양쪽 다) 공멸의 구조다. 안철수씨 입당은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선거를 같이 치렀으니 동지 아닌가. 하지만 싫어하는데 억지로 끌고 올 수는 없다.”

-연락해 봤나.
“우리가 안 해도 (안씨 쪽에서) 접촉해 온다. 구체적으론 얘기 못한다.”

-DJ가 애용하던 ‘헤쳐 모여’ 식의 제2창당은 어떤가.
“그렇게 해서 (안씨가) 들어오겠다고 하면 못할 게 뭐가 있나.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런데 세력 대 세력이라고 얘기하면 안 된다. 우리는 국회에 127석이 있는 공당이다. (안씨 쪽이 세력 지분을 주장하는) 그런 분위기도 아니다. 혁신이 문제라고 하는데 우리는 스스로 살기 위해 혁신하는 거다. 선(先)자강이다. 숲을 만들면 봉황새든 잡새든 숲으로 깃들 거 아닌가.”

-안씨가 4월 재·보선에 출마한다면.
“안철수씨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곤혹스럽고 그 사람한테 미안하다. 내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이 대선에 패배한 아킬레스건은 뭔가.
“첫째는 전략 부재다. 집토끼인 20대와 호남·영남에선 잘했지만 수도권ㆍ충청ㆍ강원도에서 전략이 전무했다. 둘째는 사령관이 없었다. 배우 두 사람(문재인·안철수)은 열심히 했는데 감독이 없는 영화를 찍었다. 100마리 양떼를 사자가 지휘해야 단결된 힘이 나오는데 우리는 사자 100마리를 양 한 마리가 지휘한 격이다. 대선캠프가 셋이고 선대위원장이 10명이었다. 총사령관의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친노 책임론’이 계속 나온다.
“선거 패배 책임은 그걸 주도적으로 했던 사람이 져야 한다. 결국 문재인 후보 아니면 안철수, 그 다음이 당 지도부, 선거대책본부다. 정치적 책임은 직위를 그만두는 거다. 이미 다 책임졌다. 문제는 (그 사람들이) 당 대표 선거에 또 나온다는 거다. (‘김부겸도 친노라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하자) 김부겸은 친노 아니다. 그런 사람들을 다 제치면 자기들이(비주류를 지칭) 당 대표를 하겠다는 건데 이 역시 전형적인 편가르기, 계파 싸움이다.”

-문재인 후보의 의원직 사퇴론을 일축했다.
“그건 부관참시다. 절대 있어선 안 될 일이다. 다만 DJ는 1971년 대선에서 떨어지고 이듬해 당권에 도전했다. 그건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게 아니다. 은인자중, 자숙의 시간이 필요하다. 본인이 할 의지가 있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딱 맞는 시간에 다시 나타나야 한다.”

-민주당은 왜 그렇게 계파 갈등이 심한가.
“문제는 계파가 아니라 계파주의다. 몇몇이 모여 DJ·노무현 사상을 연구하고 현안 관련 책을 내는 건 박수 칠 일이다. 그런데 당권 쥐고 천년세세 해먹자는 건 안 된다. 계파주의의 가장 큰 폐단은 리더십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거다. 색안경을 끼면 편견이 생겨 누가 재목인지를 못 본다. 당권을 잡으려 작심하면 다른 사람을 경쟁자로만 보고 형편없이 깔아뭉갠다.”

-통합진보당과의 연대가 대선 패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지난번 야권 연대는 마이너스 연대였다. 연대를 하려면 대의명분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얻고 절차가 투명해야 한다. 내가 대표였다면 저런 연대는 안 했다. (최근 이정희 대표가 복귀했는데) 축하 난도 안 보냈다. (유시민 전 대표 은퇴 때는) 연락은 안 해 봤다. 자유로운 사람이고 그 사람다운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DJ 정권 때 국정원 기획실장을 했는데 종북 논란을 어떻게 보나.
“나는 볼테르의 자유주의 사상을 지지한다. 국보법 폐지를 주장했다. 생각과 사상이 다르다고 구속하는 건 안 된다. 법을 위반할 때 규제하면 된다. 코페르니쿠스를 보면 생각이 다른 사람은 언제나 있고 생각 자체는 자유로워야 한다.”

-요즘 무슨 다짐을 하고 지내나.
“나는 두 가지가 두렵다. 하나는 치매, 하나는 편견이다. 둘 다 나이 먹으면 생기는 병이다. 사람이 생각의 덫에 걸리면 더 큰 걸 못 본다. 그래서 아침마다 나는 ‘더듬이’를 닦으려고 애를 쓴다. 방향감각을 상실하면 죽으니까. 중립·중도는 노력하는 게 몸에 배지 않으면 안 된다.”

류정화 기자 jh.ins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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