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의 똑똑 클래식] ‘피델리오’, 세가지 다른 판본에 네가지 다른 서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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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
음악카페 더 클래식 대표

프랑스 대혁명(1789-1799)이 있었던 직후 베토벤은 독재에 항거하는 민중들의 자유주의 정신에 큰 공감을 가지고 있었고 당시 많은 오페라가 즐겨 다루던 통속적 주제 대신 당시의 프랑스 혁명으로 상징되는 자유·평등·박애주의의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오페라를 원했다. 오페라 피델리오는 이러한 베토벤의 의도를 충실히 표현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원작 연극 대본의 이야기는 프랑스 혁명 당시 유명한 정치단체의 한 회원이 감옥에 갇히자 그의 아내가 직접 남자로 변장해 남편을 구출한 실화에 근거하고 있다. 오페라의 제목인 ‘피델리오’라는 말은 극 중에서 아내 레오노레가 남자로 변장했을 때 사용한 이름으로 그 이름 자체에 ‘지조 있는 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 오페라 ‘피델리오’는 세 가지 다른 판본이 존재하며 네 가지의 다른 서곡이 이 한 오페라를 위해 작곡됐다. 그만큼 베토벤으로서는 힘들게 완성한 작품이므로 베토벤 스스로 이 작품을 ‘슬픈 아이’라고 불렀다.

첫 번째 판본은 프랑스어로 쓰여진 원작을 독일어로 번역해 완성했는데 지금 즐겨 연주되는 피델리오가 2막인 것과는 달리 3막으로 쓰여졌다. 베토벤은 작곡을 1805년 여름에 완성하지만 검열 문제로 그 해 11월에야 빈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이 이뤄진다. 초연이 있고 2주가 지나지 않아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가 빈으로 쳐들어 오는 급박한 상황 때문에 많은 빈의 음악 애호가들은 이미 빈을 떠나 피난한 상황이라 이 오페라는 세 번만 공연될 수 밖에 없었다. 베토벤은 피델리오라는 제목 대신 원작과 같이 레오노레라 부르고 싶어 했는데 이때 쓰인 서곡은 2번으로 이름 붙여졌으나 가장 먼저 작곡된 것으로 레오노레 서곡 2번이 바로 그것이다. 이듬해인 1806년 봄, 베토벤은 몇 가지 노래들을 잘라내 전체를 2막으로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두 번째 판본으로 이 새로운 판본을 위해 쓴 서곡이 바로 레오노레 서곡 3번이다. 1807년 베토벤은 또 다시 새로운 서곡을 쓰는데 레오노레 서곡 1번이 그것이다. 이 작품은 번호 때문에 오랫동안 네 개의 서곡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왔다. 1814년이 돼서야 베토벤은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개작하게 되는데 결국 피델리오의 대본은 무려 세 사람의 손을 거쳐 비로소 완성된 셈이다. 그래서 오페라 피델리오의 공식적인 초연 장소는 빈에 있는 오페라극장이 되며 초연일은 1814년 5월 23일로 기록됐다. 이때 베토벤은 자연스럽게 다시 서곡을 쓰는데 이것이 바로 네 가지 서곡 중 가장 마지막에 작곡된 피델리오 서곡이다. 한 개의 오페라 때문에 베토벤은 얼마나 골치를 썩었던 것일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피델리오 서곡은 단 하나요 레오노레 서곡은 세 개라는 점이다.

김근식 음악카페 더 클래식 대표 041-551-5003
cafe.daum.net/the Clas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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