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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그레이드 코리아] 2. 대중교통 문턱 낮았으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무래도 버스를 타는 건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지난해 12월 22일 오후 시청 앞에서 좌석버스편으로 코엑스(COEX)까지 간 알리카 파슨스(21.미국)는 버스를 탈 때부터 내릴 때까지 잠시도 편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시청 앞 광장을 뱅뱅 돌다 간신히 버스를 탔어요. 정류장 노선안내표지엔 영문(英文)표기가 없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버스번호를 물어봤지만 모두들 난감한 표정만 짓더라고요."

가판대 상인에게 "코엑스"라고 몇차례 반복한 끝에 겨우 의사소통이 됐다. 상인은 전자계산기에 버스 번호를 찍어서 보여줬다.

안내 방송은 한국말로만 나왔다."어디서 내려야 할지 몰라 불안한 표정으로 계속 두리번 거렸더니 어느 승객이 도와줘 하차 벨을 눌렀지요.버스는 정류장에서 10m 이상 떨어진 곳에, 그것도 인도에서 1m 이상 떨어진 차도 한가운데 급정거해 놀랐어요."

서울의 대중교통은 의사 소통이 안되는 외국인을 배려한 시설이나 서비스가 전무하다시피 해 이용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이 현장을 점검한 외국인 5명의 공통된 말이다. 안내표지와 방송 등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외국인은 안 태울 건가요□"

같은 날 브리타 호프만(21.독일)은 인천국제공항에서의 버스편을 점검했다.

교통안내 데스크에서 이화여대 앞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물었다. 안내원은 "이대 앞으로 가는 버스는 없고 신촌역으로 가는 버스를 안내해주겠다"며 서너개의 노선을 알려주었다.

"정류장으로 갔더니 노선이 너무 많고 탑승장이 몰려 있어 한국 사람들도 헷갈려 하는 것 같았어요."

더 큰 문제는 호프만이 탄 버스가 김포공항을 거쳐 강서구 일대를 빙빙 돌아가는 노선이었다는 것이다.

호프만은 "나중에 이대 앞으로 바로 가는 직행버스가 있는 것을 알았다"며 "공항 안내조차 이런 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종로에서 상암동 경기장 행 버스를 탄 바오샤오둬(중국)는 "버스에 '월드컵 경기장행'이라고 한글로만 써 있을 뿐 영어나 한자 표기는 없었다"며 "정류장에 참고할 만한 지도나 안내판을 설치해두면 외국인들이 편리할 것 같다"고 했다.

#2.'미로찾기' 지하철 환승

상암동 경기장에서 지하철 6호선을 타고 고속터미널로 가던 일본인 세키구치 아유미(21.여)는 3호선과 만나는 약수 역에서 길을 잃었다.

환승하는 곳의 화살표 방향 표시만 돼 있을 뿐 충분한 안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키구치는 5~6명의 행인을 붙잡고 일본어로 '고소쿠 버스 터미나루'를 반복하며 역내를 10여분 동안 헤맨 끝에 길을 찾았다.

제르선 카스티요(21.칠레)는 시청역에서 상암동 경기장에 가려다 반대 방향인 잠실 방면 2호선 지하철을 타고 다섯 정류장을 갔다 되돌아왔다. 안내가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3.'벙어리' 택시 통역서비스

이날 상암동 경기장에서 택시를 타고 서울역으로 가던 중국인 바오샤오둬는 운전기사에게 중국말로 '무료통역'서비스를 요청했다.

택시기사는 "(사용이) 안된다"고 한국말로 말한 뒤 종이를 건네주며 "행선지를 종이에 쓰라"고 손짓했다.

바오는 "택시에 '무료통역'이라고 크게 써붙여 놓고도 사용이 안된다고 해서 크게 당황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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