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우 전 수석이 본 북핵 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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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핵 때문에 정권이 망할 수준의 제재를 가해야 한다. 김정은이 핵과 정권 중에서 양자택일하도록 하는 것이 북핵을 대화로 푸는 유일한 방법이다.”

 천영우(사진) 전 외교안보수석이 27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천 전 수석은 2010년 10월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외교안보수석에 취임해 지난 25일 퇴임할 때까지 2년4개월간 외교안보 사령탑으로 일했다.

 그는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탄 과 비교하면 3분의 1~4분의 1 수준의 폭발력을 확보한 수준”이라며 “북한의 핵 기술력이 향상된 것 외에 북한에 핵이 있다고 믿도록 하는 점에서 더 큰 목적을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또 “핵무기 단계로 가려면 더 많은 추가 핵실험이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전술핵 재배치와 핵 보유론에 대해선 “정치인이 떠들 수는 있지만 실제로 핵무장을 하면 반미 세력만 결집시켜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며 “북한이 핵을 무기화했다고 가정하고 충분한 군사적 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문답.

 - 북한의 추가 핵 도발을 막지 못했다.

 “무엇보다 핵 도발을 한 북한에 1차 책임이 있지만 한·미·중은 북한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노력을 최적화하지 못했다. 한·미·중은 북핵을 해결할 정책수단이 많았는데 제대로 사용할 정치적 의지가 부족했다.”

 - 구체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었나.

 “북한을 압박할 수단의 80%를 갖고 있는 중국은 비핵화보다는 북한 체제 생존을 우선시했다. 미국은 이란에 대한 제재를 북한보다 더 강하게 하면서도 정작 북한엔 외교적으로 야단만 칠 뿐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비핵화를 안 해도 지원해줘 북한이 핵을 개발할 재정적 여건을 키워준 잘못을 저질렀다.”

 - 김정일 사후에도 북한에 급변사태 없었다.

 “이명박 정부의 압박 정책 때문에 김정일이 스트레스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 때문에 일찍 사망했는지도 모른다. 지난 5년간 급변사태는 없었지만 긍정적 변화의 에너지를 북한에 심었고, 그 힘은 커질 것이다.”

 - 김정은 체제는 안착했나.

 “지난해 선경(先經)정책은 근본적 개혁이 아닌 궁여지책 차원의 경제개선조치일 뿐이었다. 경제문제가 심화되고 주체사상이 실존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면서 민심이 흉흉해졌다.”

 - 남북정상회담은 결국 불발됐는데.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에서 큰 업적은 북한의 정상회담 유혹을 끝까지 잘 버틴 것이다. 김정일은 정상회담 카드로 남조선을 맘대로 요리하고 휘두를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었는데 이 대통령이 그걸 깼다.”

 - 북한이 2009년 정상회담 대가로 5억~6억 달러어치의 물자를 요구했는데.

 “식량과 비료 등 5억~6억 달러어치 물자 외에도 엄청난 요구조건이 더 있었지만 아직은 공개할 수 없다.”

 - 통일을 논의할 정도로 한·중이 가까웠나.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운명을 논의하는 것이 터부(금기)시 되던 시대는 분명 지났다. 2010년 이후 우리가 먼저 통일 문제를 제기했고 중국이 경청하는 태도를 보였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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