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해 집 산 30대, 은행원 믿었다 '금리봉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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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주택담보대출로 2억원을 빌린 회사원 강모(39)씨는 올해 고정금리(연 4.7%)로 내야 할 이자(940만원)만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6개월 단위로 적용되는 변동금리를 선택했다면 1월부터는 0.6%포인트가 하락한 4.1%의 금리를 적용받아 연간 120만원의 이자를 아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강씨는 원래 같은 금리 수준의 변동금리를 염두에 뒀다. 하지만 “경기가 바닥을 찍어 금리가 오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고정금리로 대출받아 이자 부담을 줄이는 게 낫다”는 당시 은행 직원의 설득에 마음을 바꿨다. 강씨는 “당장 변동금리로 갈아타고 싶지만 중도상환수수료(3년 이내에 대출액의 최고 1.5%)가 부담돼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정금리로 대출을 받아 집을 샀던 대출자가 때 아닌 ‘금리 봉변’을 당하고 있다. 이들은 2011년 하반기 이후 ‘금리 상승을 대비해 금리가 낮을 때 고정으로 묶어놔야 한다’는 금융당국과 시중은행의 권유에 따라 고정금리 대출을 선택했는데 막상 금리가 반대로 움직이는 바람에 금리하락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2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권의 1월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는 4.19%로 지난해 같은 기간(5.06%)보다 0.87%포인트 떨어졌다. 이상한 건 금리가 내려가는데 고정금리 대출자는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신규 주택담보대출액에서 고정금리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월엔 9.7%에서 12월엔 2.5배 수준인 24.7%로 늘었다. 보통 금리 하락기에 변동금리 대출자가 늘어난다는 상식이 통하지 않은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금융당국의 정책이다. 금융당국은 금리 상승 시 가계부채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해 고정금리 대출을 늘리라고 독려했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2011년 6월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시중은행에 “2016년까지 전체 주택담보대출에서 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30%로 올리라”고 지시했다. 변동금리 대출자가 고정금리로 갈아탈 때는 중도상환수수료를 면제해 준다는 ‘당근책’도 내놓았다. 은행은 목표치를 채우기 위해 창구에 대출받으러 온 고객에게 고정금리를 적극 권했다. 지난해 3월에는 주택금융공사가 원리금을 보증하는 10년 이상 장기고정금리대출인 ‘적격대출’이 나와 은행이 대대적인 홍보전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금리상승에 초점을 맞춘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과는 달리 지난해 7월과 10월 한은의 두 차례 기준금리 인하 여파로 대출금리가 크게 내려갔다. 더구나 올해 상반기에 한은이 기준금리를 더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금융시장 전문가의 중론이다. 이럴 경우 고정금리 대출자의 손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이 정책 판단을 잘못해 많은 대출자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지난해 미국·유럽의 양적완화 정책 영향으로 금리가 내려가는 추세였는데 한국 금융당국만 정반대로 고정금리 정책을 고수했다”며 “결과적으로 소비자는 변동금리 대출을 이용하지 못해 피해를 보고, 고정금리 대출이 커진 은행의 이익만 늘었다”고 말했다.

 물론 중장기적으로 경기가 회복돼 금리가 오르면 고정금리 대출자가 유리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는 소비자에게 몰아가기 식으로 선택을 사실상 강요한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금리가 하락하는 추세에 금융당국이 고정금리를 독려하는 건 책임질 수 없는 정책”이라며 “소비자가 자유롭게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주택담보대출 금리

변동금리와 고정금리가 있다. 은행권 자금조달비용지수(COFIX, 코픽스) 연동 변동금리의 경우 6개월 또는 1년 단위, 양도성예금증서(CD) 연동 변동금리는 3개월 단위로 바뀐 금리가 적용된다. 시중은행의 고정금리 대출상품은 10년 이내, 주택금융공사의 적격대출은 10~35년 동안 일정한 금리를 내도록 설계돼 있다. 보통 대출 후 3년 이내에 고정금리에서 변동금리로 갈아탈 때는 중도상환수수료가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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