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은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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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종로와 명동에 지하도가 개통됐다. 그러나 이번에 개통된 지하도를 만드는데 소비된 돈과 노동량과 시민의 기대에 비하면, 벌써 개통된지 오랜 남대문 지하도는 문제가 안된다.
하지만, 새 것이 생겼다고 헌남대문지하도를 완전히 잊어서 될까. 무엇이고 일단 만들어 놓고나면 그것을 그만 깨끗이 잊어버리고 마는 우리의 풍습으로 봐서 「끝은 끝」이란 새 속담이 생길 법하다. 지하도고 육교고 또 무슨 건물이고 간에 일이 끝나기가 무섭게 준공 또는 낙성식이라는 의식이 베풀어지고 높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테이프」를 끊고 신문에 대서특필된다. 그리곤 슬그머니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다. 마치 길을 뚫고 건물을 세워서 오래오래 공공의 편의와 이익에 이바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식을 올리고 「테이프」를 끊고 「플래쉬·밸브」를 터뜨리기 위해서 공사를 벌인 것처럼.
남대문 지하도가 이젠 그 모양 그 꼴이 됐고, 새로 뚫린 두 지하도 때문에 더욱 초라해질 판이지만, 그것이 개통됐을 때는 아담하고 깨끗하고 쓸모도 있는 서울의 명물이었다. 먼 옛날에 뚫려서 낡고 추악해진데 대한 구실이 있는 남대문 지하도를 들먹일 것은 없다. 그렇다면 불과 몇 달 전에 완공된 육교들의 관리는 과연 제대로 돼 있는가. 왕래가 한산할 때 육교를 건너던 사람들이 발을 멈추고 시원한 바람을 쐰다든가, 철없는 개구장이들의 놀이터가 된다든가 하는 것은 차라리 애교가 있다. 그러나 가뜩이나 좁다란 층계나 다리 위에다 잡화상자를 펴놓고 주저앉은 노점상들이 보이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새로 개통된 두 지하도의 완성을 기뻐하면서도, 그것이 남대문 지하도의 전철을 밟으면 큰일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가오는 추운 계절을 바라보면서, 공들여 만든 서울의 자랑거리가 집없는 천사들의 유숙소가 되면 어쩌나 하고, 지레 겁을 먹는 이들이 있다. 준공식보다는 준공 후의 관리가 더 중하다. 벌써 금이 가고 비 새는 곳이 있다는 소문도 있다. 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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