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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불편해도 참는다, 서울대 가야 하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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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사람들’ 글 싣는 순서
① 우리는 왜 브레이크 없는 열차에 탔나
② 밖에선 이해 못할 그들만의 세상
③ 대치동 키즈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대치동 학원에는 늘 아이들로 넘친다. 한 학원 복도에 앉아 있는 학생들. 사진=김경록 기자

“거긴 대치동이니까.” 사교육에 관해서라면 아무리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해도 다들 이렇게 얘기한다. “대치동이잖아.” 상식과 비상식, 정상과 비정상을 논하기에 앞서 대치동의 사교육은 이렇게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대치동이 대체 무엇이길래, 아니 대치동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대치동 밖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거꾸로 대치동 사람들에게 물었다. 뭘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김모(9)양의 엄마 정모(41)씨는 전형적인 ‘대전족’(자녀 교육 위해 대치동에서 전세 사는 사람)이다. 남편이 대기업 부장이긴 하지만 시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 강남 입성은 쉽지 않았다. 은행 빚을 얻어 지난해 초 전세로 대치동에 들어왔다. 엄마는 조급했다. 대치동으로 이사하자마자 김양은 학원 9개를 동시에 다녀야 했다. 월·수·금요일은 영어, 화·목·토는 수학 학원을 갔다. 주말에도 학원 순례는 이어졌다. 토요일은 독서논술과 골프·수영, 일요일은 사회·과학 학원을 갔다. 피아노와 플루트 교습도 일요일에 몰아서 했다. 엄마는 “아이가 금방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세 달 만에 김양에게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학원은 물론 학교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고, 시도 때도 없이 짜증을 부리고 화를 냈다. 심각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였다. 엄마는 김양을 병원에 데리고 다니면서도 사교육을 놓지 못했다.

 정씨는 “한 번 약을 먹이면 4시간은 집중한다”며 “학원 수업 듣기에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아빠 김모(42)씨는 “애 건강이 우선”이라며 정씨를 말렸지만 엄마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정씨는 “미쳤다고 욕해도 좋다”며 “그러나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다른 대치동 아이들에 비하면 이 정도도 모자란다”면서.

 더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대치동 엄마들 심리 상담을 해주는 정철희 건국대 미래교육원 교수가 들려준 얘기다. 강원도 홍천에서 영재로 통하던 김주성(16·가명)·주형(13) 형제는 엄마 최모씨와 함께 2008년 대전족이 됐다. 사업하는 아빠는 홍천에, 다른 가족은 대치동에 사는 이른바 ‘참새 가족’ 생활이었다. 최씨는 “난 다른 대치동 엄마들처럼 애들한테 잔소리하며 들들 볶지 않겠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자정 넘은 시간까지도 불야성 같은 학원가를 볼 때마다 초조한 마음에 애들을 잡았다. 주성이는 “엄마 때문에 과민성대장증후군이 걸렸다”며 “엄마가 나한테는 스토커”라고 말했다. 직접적인 잔소리도 싫었지만 끊임없이 불안하게 쳐다보는 엄마의 시선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이다. 홍천 영재가 서울로 온 후 외모 꾸미기에만 관심을 쏟았다. 공부는 뒷전이었다. 주형이는 처음엔 엄마의 기대에 부응했다. 문제는 학업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서 불거졌다. 형제의 성적이 신통치 않은 데다 이런저런 문제까지 안고 있다 보니 다른 대치동 엄마들은 최씨를 노골적으로 멀리 했다. 2011년 최씨는 우울증과 뇌경색으로 세상을 떴다. 아이들은 홍천으로 돌아갔다.

 이런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더라도 대치동에서는 대치동 밖 사람들 눈엔 이상한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상암동에 살다 올 초 아들의 고교 입학에 맞춰 대치동으로 이사온 강모(49)씨는 대전족이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전세 구하기가 첫 관문이었다. 언론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연일 대치동에 찬바람이 분다고 했다. 대치동 부동산에서는 상가 매매나 오피스텔 매매가 확연하게 줄었다고 아우성이었다. 그런데 집을 구할 수가 없었다. 강씨는 “대치동 전세가는 매매가의 70~80% 수준이나 된다”며 “그런데도 집이 없어 난리더라”고 말했다. 그는 “같이 집을 구하던 엄마들 중 아직 구하지 못한 엄마가 더 많다”며 “나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강씨가 운이 좋다고 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전세 얻은 집이 올해 서울대에 합격한 아이가 살던 집이기 때문이다. 그 집 엄마는 아이의 서울대 합격과 함께 5년 대전족 생활을 정리하고 이 집을 강씨에게 ‘물려줬다’. 대치동 전세 얻기가 워낙 어렵지만 이렇게 명문대 합격생을 낳은 아파트 전세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이 집은 108㎡(32평)에 전세값이 8억원이 넘는다. 비슷한 평수의 다른 집은 7억~7억5000만원 수준이다.

 이모(45·신천동)씨는 “대치동 아파트 전세는 살던 애들의 대입 합격 여부에 따라 인기도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는 “대치동 아이파크의 한 라인 전체가 매년 한영외고에 합격한 덕분에 그 라인은 외고 ‘금줄’로 불린다”며 “비슷한 평수의 다른 전세보다 최소 10%는 더 비싸다”고 귀띔했다.

대치 4동 주민센터 옥상에서 바라본 대치동 전경. 대치동엔 고층 아파트 뿐 아니라 다세대 주택도 많다. 다세대 주택 뒤로 역삼동 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이런 정보는 부동산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대개 돼지엄마 입에서 퍼진다. 지난달 초 만난 이씨도 돼지엄마가 점지해 준 집을 미리 예약해 두고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봐둔 그 집 아이는 KAIST에 원서를 넣었는데 이씨가 그 집 엄마보다 더 지극정성으로 애 합격을 기원하는 중이었다. 그래야 대치동에 입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약한 집 아이가 재수를 하면 이씨 역시 대치동 입성을 1년 늦추거나 아니면 부랴부랴 다른 집을 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합격해서 전세 계약이 이뤄지면 돼지엄마는 부동산 중개료에서 커미션을 챙긴다.

 이렇듯 전반적인 부동산 시장 침체와는 무관하게 대치동 핵심은 여전히 상종가다. 대치동 학원이 문을 닫는다지만 인기 있는 대형 학원의 위세는 여전하다. 아직도 대기표를 받아 입학시험 치르고 학생을 받는다.

 원룸·오피스텔 전세도 대한민국 부동산 불황과는 완전히 거꾸로 논다.

 학원가가 밀집된 대치4동 원룸촌은 다른 지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단기 임대로 활용하는 곳이다. 집은 다른 곳이지만 대치동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주로 쓴다. 김모(고1·경기도 분당)군은 학교가 끝나는 오후 5시면 곧바로 학교 앞 원룸으로 간다. 집에 가기 전 개인교습을 받기 위해서다. 분당 학원을 다닐 수도 있지만 오가는 시간을 줄이자는 생각에 이 방법을 썼다. 대치동 강사들에게 강습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김군 엄마가 밤 12시에서 1시 사이에 차를 몰고 김군을 데리러 온다. 김군은 “학교 근처에 집을 빌려 공부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드문 사례도 아니다”고 했다.

집이 대치동인데도 대치동에 오피스텔을 빌리는 경우도 있다. 학교에서 집까지 오가는 10분도 아깝다는 생각에서다. 박모(45·대치동)씨도 그런 경우다. 그는 한티역에 있는 오피스텔에서 애들 입시준비를 시켰다고 한다. 박씨는 “대학교 2학년인 아들이 고3이던 2010년 수능을 앞두고 3개월간 오피스텔을 임대했다”며 “수능이 다가오면 상위권 그룹 아이들은 학교나 학원 근처 오피스텔을 임대해 자투리 시간을 줄이고 공부시간을 늘리는 데 집중한다”고 말했다. 오피스텔 안에는 책상과 냉장고가 전부다. 박씨는 “수능 직전 100일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최상의 환경을 만들어줬다”고 회고했다.

 한티역에 위치한 오피스텔 주인 이길숙(65)씨는 “올해 수능 기간에 특별히 예년보다 임대율이 더 높아지진 않았고 평소와 비슷했다”며 “주요 대학 논술시험 기간인 10월과 11월엔 그나마 수능 때보다 임대 문의가 더 많았다”고 말했다.

 대치동에서 집 구하기만 극성일 리 없다. 본 목적인 사교육에 관한 한 웬만한 상상을 초월한다. MB정부 시절 한번 단속해 보려다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과외방’이 이젠 ‘합숙 과외방’으로 한 단계 더 ‘진화’했다.

 양모(45·상암동)씨는 대치동 학원을 알아보다 귀가 솔깃한 소문을 들었다. 소문엔 “애 다섯 명 엄마들이 모여 대치동 스타 강사를 1년 계약으로 초빙했다”고 했다. 핵심은 다음이다. 과외를 위해 아예 타워팰리스 한 채를 임대해 1년간 합숙시켰다는 거다. 양씨는 “고3 1년간 강사와 아이들이 합숙하며 공부했다더라”며 “올해 전원이 서울대에 합격할 정도로 효과가 확실했다”고 말했다. 양씨는 이 소문을 듣는 순간 “바로 이거다” 싶었다고 한다. 그는 타워팰리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오피스텔이나 아파트를 임대해 비슷한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대치동 강사를 붙여줄 계획이다.

 대치동 학원이 문을 닫는 현상의 이면에는 이런 불편한 진실이 있다. 사교육에 대한 수요가 줄었다기보다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요즘 대치동에서는 대형 학원의 인기 강사가 최소 인원으로 강의하는 소규모 학원들이 뜬다고 한다.

 ‘자물쇠 학원’ 역시 대치동에서 새롭게 뜨고 있다. 수학 강사 이모(48)씨는 “방학 때면 특히 하루 7~9시간 동안 한 과목만 집중적으로 매일 공부하는 프로그램을 갖춘 일명 ‘자물쇠 학원’이 인기를 끈다”며 “화장실 가는 시간과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 꼬박 수업을 듣기 때문에 사실상 자물쇠를 잠갔다는 의미로 자물쇠 학원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씨는 “자물쇠 학원을 다니는 애들은 방학이 제일 싫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대치동에서 학원 안 가는 애들이 있을까. 묻기가 무섭게 강남 엄마들이 야유를 보냈다. 이은영(47·반포동)씨는 “솔직히 중학교까지는 학원 안 가고 상위권 유지하는 애들이 있다”며 “고교 때는 유전자가 특출 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원 안 다니고 상위권인 아이들은 없다”고 말했다. 김주선(47·양재동)씨는 “요즘 학원에선 초등학교 1학년부터 국제중 대비반을 모집한다”며 “외고나 국제중을 염두에 둔 아이들이 초등 1학년부터 사교육을 시작하는데 어떻게 이기겠느냐”고 물었다. 예비 고1을 둔 최문영(42·대치동)씨는 “입학 전까지 수학Ⅰ(고1 과정)은 기본이고 빠른 아이들은 수학Ⅱ(고2 과정)까지 선행한다”며 “입학과 동시에 심화와 반복 학습을 하는 아이들을 무슨 수로 따라잡겠느냐”고 말했다.

 엄마들은 “언제 어떻게 교육정책이 바뀔지 몰라 불안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씨는 “정책이 아무리 바뀌어도 내신이 탄탄하면 문제될 게 없다”며 “선행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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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우리는 왜 브레이크 없는 열차에 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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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은어들

대전(살이)족(族) : 자녀를 대치동 학교에 보내기 위해 무리해서라도 대치동에 전세 얻어 들어온 사람들.
대전족 아빠 : 현대판, 아빠판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참새 아빠 : 부인·자녀만 ‘대치동 유학’ 보내고 본인은 타지에서 생활하는 아빠. 자녀를 해외 유학 보내는 ‘기러기 아빠’보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아빠들.
카페맘·아카데미맘 : 대치동 학원가 인근 커피전문점에 모여 사교육 정보를 교환하는 엄마들.
과떠리·외떠리·민떠리 : 과학고·외고·민족사관고를 준비하다 떨어져 일반고에 진학한 대치동 아이들.
강대(강남 대성학원)1반 : 수능을 치른 날, 서울대 합격선만큼 점수가 안나온 아이들은 재수를 위해 곧장 강남 대성학원에 등록한다. 1년 후면 대다수가 서울대에 합격한다는 강대1반의 커트라인은 서울대만큼 높다.
돼지맘·돼지엄마 : 사교육의 힘을 빌려 자기 자녀를 국제중·특목고·명문대에 진학시킨 엄마. 다른 엄마를 몰고다니는 모습이 새끼돼지를 끌고다니는 어미돼지와 흡사해 붙여진 이름.


메트로G팀=안혜리·이원진·김소엽·박형수·전민희·강나현 기자 ,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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