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악마들 "우리도 월드컵 국가대표"

중앙일보

입력

"붉은 악마들 속에 있으면 온 국민의 거친 숨소리가 느껴집니다. 이제 전세계 사람들과 호흡하며 감동을 나눌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찹니다."

태극전사들의 응원단, 붉은 악마들.

그 멤버들이 2002년 월드컵의 해를 맞아 붉은 유니폼을 벗고 응원석을 뛰쳐나왔다. 대신 자원봉사자로 변신해 곳곳에서 '성공 월드컵'을 위해 뛰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선수로 뛰며 한때 태극 유니폼을 꿈꿨던 박찬웅(朴贊雄.31.엑티브웹 프로그래머)씨는 1백50일 뒤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전산담당요원으로 월드컵에 참여하게 된다.

1999년부터 한국팀의 12번째 선수인 '붉은 악마' 응원단으로 뛰던 그가 13번째 선수(자원봉사자)가 된 것이다.

"전세계인의 축구축제를 곁에서 직접 지켜보게 돼 정말 행복합니다. 태극전사들의 응원단이 아닌 코리아의 응원단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년 전 결혼한 부인 이영옥(李英玉.31)씨도 붉은 악마 멤버다. 朴씨는 인천시 연수동 신혼 방을 온통 월드컵 관련 포스터로 도배할 정도로 축구광이다.

월드컵을 1년 앞둔 지난해 5월에는 월드컵 자원봉사 지원자를 위한 정보교류 모임(http://www.freechal.com/2002wc)을 만들었다. 반년 사이에 회원이 2천6백여명으로 늘어나 그를 포함한 1천7백여명이 지난해 연말 1차로 한국월드컵조직위의 공식 자원봉사 요원으로 뽑혔다.

이들은 자치단체들이 별도로 선정하는 봉사요원들과 함께 경기장 검표에서 경기운영.관중안내.통신.교통.수송.외국어서비스.의무.미디어 등 13개 분야에서 성공 월드컵을 만들어낼 꿈에 부풀어 있다.

역시 열혈 붉은 악마인 이지은(李知殷.26.여.서울 서초구 양재동)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영어회화학원 강사인 그는 월드컵 기간 중 의전 담당 통역을 맡는다. 자원봉사자로 뽑힌 뒤부터 그는 서울 대학로 카페 등지에서 회원 10여명에게 영어회화를 지도하고 있다.

월드컵 로고가 그려진 도포를 입고다니는 아마추어 가수 나영진(羅永鎭.55.수원시 매탄동)씨. 그는 수원시 공식 홍보가수로 발탁돼 수원구장에서 '비바 코리아'를 부르는 영예를 잡은 행운아다.

"무명가수 30년에 이렇게 바쁘고 행복해 본 적이 없어요."

최고참급 붉은 악마인 그는 주로 지방의 문화축제나 회갑잔치 등에서 공연하면서 월드컵 관련 노래를 부르고 퀴즈를 내는 월드컵 홍보맨이다.

98년엔 수원에서 월드컵이 열리기를 기원하며 '비바 월드컵 수원 코리아'라는 음반도 발표했다.1천만원을 들여 1만장을 찍어 공연행사 등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눠주고 있다.

붉은 악마에서 자원봉사자로 변신한 이들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그득했다.

"2만5천 자원봉사자는 물론이고 전 국민이 대한민국을 응원하는 '붉은 악마'가 된다면 이번 월드컵은 역대 최고의 대회가 될 겁니다."

지난해 12월 30일 붉은 악마 출신 동료 자원봉사자들과 자리를 함께 한 이들은 "봉사하느라 경기를 직접 보긴 어렵지만 더 중요한 건 축구를 사랑하고 동참하는 마음"이라며 파이팅을 외쳤다.

월드컵조직위는 이들에게 '그라운드 밖의 국가대표'라는 이름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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