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D램사업 포기'에 업계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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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가 정말 D램사업을 포기하나?'

하이닉스[00660]반도체 처리가 D램사업을 아예 포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면서 업계 일각에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국가경제에 두고두고 짐이 되는 하이닉스 문제를 가급적 서둘러, 명쾌하게 매듭지으려는 채권단 입장은 이해하지만 20년간 공들인 한국반도체산업의 위상이 너무쉽게 무너지는것 아니냐는 우려감에서다.

협상초기 합병론이 나올때만 해도 `설마'하며 잠잠하던 업계분위기가 막상 처리수순이 구체성을 띠어가자 뒤늦게 이런저런 목소리를 내는 형국이다.

◆ 한국, D램강국 지위 상실 우려 = 그동안 업계전문가 대다수는 하이닉스가 협상과정에서 D램부문 만큼은 지킬 것으로 짐작했다. 회사의 `몸통'이자 `정체성'이기도 하지만 한국 D램산업의 위상과 국내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한국은 작년기준으로 전체 D램시장의 42%(IDC 조사) 가량을 차지해 세계 최대의D램 생산국으로서의 위치를 수년째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가 22.9%, 하이닉스가 18.9%다. D램은 우리나라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 안팎으로 단일 품목으로는가장 크고 산업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6%다.

정부와 채권단도 은연중 `산업정책적 고려'를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게 업계의 시각이다. 그러나 막상 `D램 완전매각, 비D램 부분매각'으로 분리매각 방침까지흘러나오자 업계 관계자들은 몹시 당혹해하는 표정이다.

반도체업계의 한 임원은 "말이 분리매각이지 D램사업을 파는 건 아예 하이닉스를 판다는 뜻"이라며 "한국반도체산업은 시장주도권을 상실하고 국가경쟁력도 크게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하이닉스가 비메모리 전문기업으로 간다고 하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말처럼 쉬운게 아닐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다른 임원은 "결정권을 쥔 사람들이 산업에 대한 이해 없이 너무 조급증에 시달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며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는 `묘안'일지 몰라도 먼훗날 크게 후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앞으로 협상과정에서 D램사업을 매각하더라도 합작법인화하는형태를 취해야한다는 의견도 제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LG전자와 필립스의 50:50 합작회사 설립방식이 국내 산업기반을 지키고 외자도 유치한다는 점에서 가장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 불가피한 해법 시각도 = 하이닉스의 D램사업 포기는 반도체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하이닉스 문제를 처리하려면 현단계에서 불가피한 해법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D램사업의 통합움직임이 세계 반도체산업 구조조정의 대세이기도 하지만, D램사업 매각 없이는 유일한 원매자인 마이크론과의 협상이 성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구조조정의 흐름을 활용하면서 하이닉스 재무구조를 해결하려면 D램사업을 빨리 떠넘기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며 "더 이상 경영권이나 산업논리에 집착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D램사업이 마이크론에 넘어가더라도 종업원과 기술인력, 협력업체 기반이 고스란히 국내경제에 기여한다는 점을 꼽는 분석도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무작정 매각되는 국내기업이 단순 생산하청기지로 전락한다고 보면 안된다"며 "비슷한 논리로 대우차 해외매각에 반대하다가 결국 GM에 헐값 매각하는 결과만 빚었다"며 "국민정서나 산업논리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 삼성전자 `노코멘트' = 독주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하이닉스가 D램사업을 포기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데 대해 여전히 공식대응을 피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가설이 현실화될 경우 시장주도권을 상실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만약 마이크론.하이닉스.도시바 연합(시장점유율 44%)이 부상한다면삼성전자의 시장지배력은 급속히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마이크론이 국내 협력업체와 종업원, 기술인력 등 잘 다져진 인프라를 활용한다면 삼성전자와의 경쟁력격차는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딜이 성사되더라도 삼성전자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나오고 있다. 우선 마이크론과 하이닉스 고객의대부분이 중복돼 있어 `1+1=2'의 시너지효과를 보기는 어려운데다 아직까지 양사의기술경쟁력이 삼성전자를 따라잡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 단기적으로는 마이크론이주도하는 시장질서 재편이 오히려 삼성전자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높다는 분석이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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