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만 골목상인 "일본 제품 안 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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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일본이 지난 22일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강행한 데 반발해 국내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이 대대적인 일본 제품 불매 운동에 나서기로 했다.

 전국적으로 회원이 600만 명인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은 25일 “80여 개 직능단체와 60여 개 소상공인·자영업단체, 시민단체 등과 함께 3월 1일부터 일본 제품을 일절 취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연맹 측은 초기엔 외식업중앙회(42만 명), 담배판매인연합회(14만 명), 노래방연합회(5만 명), 인터넷PC문화협회(6만 명)를 합한 60만 명 수준이 동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엄태기 연맹 행정실장은 “소속 회원과 가족, 비회원 업체까지 독려해 약 1000만 명이 불매운동에 동참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매운동 대상은 ‘마일드세븐(담배)’ ‘아사히(맥주)’ ‘니콘(카메라)’ ‘유니클로(의류)’ ‘도요타·렉서스(자동차)’ ‘소니(전자제품)’ ‘혼다(자동차·오토바이)’ 등이다. 소비재부터 공산품까지 다양하다. 현재 연맹 소속 자영업자들은 국내에 유통되는 일본 제품의 80%가량을 취급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민간 차원의 대규모 일본 상품 불매운동은 드문 일이다. 1920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 제품 대신 국산품을 쓰자고 한 ‘물산 장려 운동’이 최초다. 해방 이후 뜸했던 불매운동은 2000년대 들어 독도 영유권, 역사왜곡 문제가 부각되면서 소규모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간간이 벌어졌다.

 오호석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 공동 상임대표는 “대한민국 내수시장의 최종 판매자로서 독도를 지키려고 마일드세븐을 비롯한 일본 제품을 사지도 팔지도 않기로 했다”며 “일본의 과거사 반성과 독도 침탈 행위 등에 대한 진정성 있는 행동이 나오기 전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맹은 이번 주부터 소속 영업장에 ‘일본 제품은 사지도 팔지도 말자’는 불매운동 스티커를 붙이고 손님들에게도 불매운동 참여를 독려하기로 했다.

 연맹은 지난해 삼성·신한카드 등을 상대로 불매운동을 벌여 중소 자영업자의 카드 수수료율 인하를 이끌어냈다. 또 지방자치단체들이 대형할인점 의무휴무제를 도입하게 하는 데도 적잖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불매운동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일본 극우세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 우선 꼽힌다. 지지·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들은 이날 “한국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광범위하게 전개되는 것은 처음이며 양국 간 통상마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내용의 보도를 신속히 내보냈다. 이에 일본의 일부 극우 네티즌은 “우리도 행동에 나서야 한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자칫 양국 민간 차원의 갈등 상황이 부각되면 독도 문제가 국제분쟁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고려대 서승원(일문학) 교수는 “불매운동이 예고된 규모대로 이뤄진다면 과거 반일운동과는 차원이 다를 테지만 그렇지 않다면 경제·외교적 실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또 일본 극우 정치인과 극우 단체들에 반한 활동의 빌미를 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정치 이슈인 독도 영유권 갈등을 경제 이슈로 비화시켜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영남대 김상현(한국유통학회장) 교수는 “(냉정하게 볼 때) 독도 문제를 경제 이슈화하는 건 양국에 모두 피해를 줄 수 있다”며 “이번 불매운동은 자영업자 단체들의 존재감이나 정책적 요구사항을 국민 감정에 호소해 홍보하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형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지난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갈등으로 인해 중국에서 과격한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벌어졌다”며 “그 결과 일본 기업들의 매출이 급격히 줄었지만 중국 부품 제공 기업들의 피해도 컸다”고 말했다.

 불매운동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도 미지수다. 서울 종로의 한식당 주인 김모씨는 “일본 관광객이 많이 찾는데 식당 문에 불매운동 스티커를 붙여 놓으면 장사가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 역시 “요즘 엔저 때문에 일본 관광객이 점점 주는데 오는 손님을 내쫓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장정훈·이승호 기자

◆물산장려운동=일제 강점기 때인 1920년대 일본 제품 대신 국산품을 써 민족자본을 육성하려 한 운동. 1920년 7월 평양에서 조만식 등 민족지도자와 자작회(自作會)가 조선물산장려회 발기인 대회를 열고 시작했다. 이후 ‘내 살림 내 것으로’라는 구호와 물산장려 노래 등이 보급되며 전국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과 방해공작으로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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