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전화기는 왜 가구처럼 꾸몄을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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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호 14면

초창기 전화기. 이 전화기는 실용성보다는 귀족들 집안 분위기에 어울릴 것인가에 더 초점을 맞추고 디자인됐다. 화려한 문양과 고전풍 가구에 흔히 나타나는 사자발이 있는 반면, 2개의 울림통은 보기 흉하게 밖으로 나와 있다. 물건에 대한 두려움을 당시 유행한 친근한 가구 스타일로 상쇄하려고 한 의도의 결과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전화기·라디오·TV·냉장고·자동차 같은 신개념 물건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두려움이었다. 첨단 기능을 갖춘 디지털 제품에 열광하는 이른바 ‘테키족(techies)’이니 ‘얼리어답터’니 같은 부류들은 요즘 나타난 현상이다. 20세기 초반 사람들에게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나오는 기계, 즉 라디오의 음성은 공포 그 자체였다. 전화기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런 제품을 파는 사람들의 큰 과제는 사람들의 두려움을 누그러뜨리는 것이었다. 디자인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반기는 듯하지만, 대개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익숙한 것이 더 안전하고 쉽고 친근하며 부담스럽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개념의 물건이 나오면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이 낯설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게 관건이다. 최초의 전화기나 라디오, TV 등이 가구를 닮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에디리언 포터는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에서 새 물건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자 디자이너들이 세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고풍스러운 디자인, 은폐하기, 이상향 디자인이 그것이다.

김신의 맥락으로 읽는 디자인 <14> 낯섦과 익숙함

고풍스러운 디자인은 흔히 고급 가구처럼 보이게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예전 TV 드라마를 보면 부잣집 거실에는 늘 로코코풍 장식을 휘감은 전화기가 놓여 있었다. 1970년대의 장식장 속 TV도 같은 맥락이다. 신개념의 물건들은 처음엔 굉장히 비싸다. 평범한 사람들은 구입하기 힘들다. 따라서 부자들 눈높이에서 낯설지 않은 외관을 가져야 한다.
은폐하기는 아예 물건 자체가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1920년대에 처음 나온 라디오는 럭셔리한 의자의 커다란 팔걸이 속에 감추었다고 한다. 이상향 디자인은 진보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다. 이는 친숙한 외관은 아니지만, 당대의 가장 앞선 스타일로 포장하는 것으로 아주 낯선 것도 아니다. 비행기를 흉내 낸 1930년대의 유선형 자동차와 유선형 냉장고, 유선형 토스트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최근에는 매끈한 표면의 미니멀리즘 외관이 가장 진보적이면서 익숙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은폐하기를 제외한 고전주의풍 디자인과 이상향 디자인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은유적 언어의 방식을 취한다는 사실이다. 낯설지 않음을 유도하려고 새 물건의 외관에 그 시대에 문화적으로 널리 알려져 누구나 알 수 있는 이미지를 대입하는 것이다.
이는 회화에서도 흔히 사용하는 기법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실제 유대인의 유월절 만찬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인 유월절 만찬에 의자에 앉아서가 아니라 누워서 식사를 했다. 노예로부터 해방된 자유를 만끽하기 위한 일종의 의식이다. 그러나 15세기 유럽인들에게 그런 식사 예법은 너무나 이질적이어서 ‘최후의 만찬’이라는 종교적 신비를 전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다빈치는 당대 그 지역 사람들의 정서적 유대감을 이끌어내고자 은유의 기법으로 외국의 낯선 풍습을 15세기 이탈리아 도시국가 식으로 친근하게 번역한 것이다. 성경의 이야기를 다룬 서양미술사의 무수한 그림들은 대개 이처럼 번역된 것이다.

1 1930년대 유선형 스타일의 토스터기. 새로운 물건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하는 방법으로 고전주의풍 스타일링과 함께 진보적으로 스타일링하는 것도 강력한 방법이다. 30년대 미국에서는 가장 진보적 기술의 산물인 비행기를 흉내 내 수많은 제품이 유선형으로 디자인됐다. 2 조너선 아이브가 디자인한 아이맥. 반투명의 컬러풀한 색상으로 가정용 도구로 더욱 다가가고자 했다. 특히 손잡이는 실용적 목적이 아니라 친근함이라는 은유의 언어이자 재미이기도 하다. 3 찰스 & 레이 임스 부부가 디자인한 어린이용 코끼리 의자. 아이들을 위한 물건은 친근감을 주기 위해 대개 동물 은유가 담겨 있다. 4 마르첼로 니촐리가 디자인한 미렐라 재봉틀. 고된 노동을 상징하는 재봉틀이 가정용으로 보급될 때 화사한 외관을 입음으로써 힘들다는 관념을 상쇄했다.

첨단제품에 대한 두려움 없애는 디자인
이런 은유의 언어는 어린이를 위한 제품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다. 따라서 아동용품의 표면에는 늘 아이들에게 친근한 만화 캐릭터나 동물 캐릭터가 따라다닌다. 좀 더 고차원적으로는 찰스와 레이 임스 부부가 디자인한 코끼리 의자처럼 아예 형태 자체를 동물 은유로 표현하는 것이다.

은유의 언어를 간절히 갈망하는 또 다른 분야는 IT 기기들이다. IT 기기 디자인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뛰어난 은유는 컴퓨터의 GUI(Graphical User Interface)일 것이다. 폴더 만들기, 파일 보기, 파일 삭제하기 같은 과거 컴퓨터의 언어는 일반인들에게 익히기 힘든 문법이었다. 게다가 컴퓨터는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시각적 단서가 없다. GUI는 차갑고 매정한 기계의 난해한 언어를 사람들이 늘 하는 ‘책상 위의 작업’으로 번역한 것이다. 그러자 컴퓨터는 노인들조차 쉽게 배울 수 있는 친근한 물건이 되었다.

애플의 디자인 디렉터 조너선 아이브는 컴퓨터의 외관에서도 은유의 방법으로 친근감을 더했다. 프로들이 아닌 일반 소비자를 위한 컴퓨터 아이맥을 반투명 케이스에 싼 것은 마치 초창기 라디오를 가구처럼 표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가정용 물건으로 보이려는 의도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컴퓨터 뒷부분에 손잡이를 달았다. 손잡이는 컴퓨터를 들라는 실용적 목적으로 디자인된 게 아니다. 자기가 손잡이로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관계 맺기 쉽다고 아양을 떠는 것이다.

산업용 제품으로 태어난 재봉틀과 타자기가 가정용으로 보급될 때도 은유와 번역이라는 옷을 입음으로써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했다. 재봉틀과 타자기는 사실 공장과 사무실에서는 고된 노동을 상징하는 기계들이었다. 생긴 것도 딱딱한 기계처럼 생겼다. 그것이 가정으로 들어올 때는 너무나 화사하고 매끈한 케이스로 감싸여졌다. 덕분에 힘들다는 관념은 증발시켜버리고 가정 내 여성의 고귀한 활동을 위한 수단으로 승화됐다. 주방에서 노동을 유발하는 수많은 도구 역시 이런 은유의 언어로 주부들을 유혹한다.

기계문명이 낳은 수많은 첨단 제품은 사람들을 두렵게 한다. 두려움은 제조업자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다. 두려운 상품은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때 디자인이 구세주처럼 나타나 은유의 언어로 두려움을 상쇄했다. 실용적인 목적과 예술적인 목적을 위해 봉사하지만, 낯설고 두려움을 주는 물건에도 정서적 친밀감을 유도하는 일종의 언어로 디자인이 평가받는 이유다.



김신씨는 홍익대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7년 동안 디자인 전문지 월간 ‘디자인’의 기자와 편집장으로 일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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