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2개월만에 넘어선 달러당 130엔]

중앙일보

입력

엔화가치가 25일 달러당 1백30엔선에 들어선 것은 일본 정부가 경기회복을 엔저(低)카드를 분명하게 꺼내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동안 재무성은 엔저를 통해 수출을 늘리고 경기를 되살리는 방안을 검토해 왔으나 국제적인 반발을 의식해 드러내놓고 추진하지는 못했다. 특히 통화위기를 당한 경험이 있는 아시아 국가들과 중국은 엔저에 아주 예민한 반응을 보여왔다.

그러나 일본이 세계 경기회복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엔저를 용인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재무관이 25일 "엔화가치는 현재 일본 경제의 기초 체력을 반영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앞서 지난 18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일본 정부에 대해 엔저를 초래하더라도 금융완화정책을 더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 이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 통화당국이 일본의 엔저 유도정책을 묵인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엔저, 일본 경기에 어떤 도움 주나=우선 수출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상품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지면서 그동안 위축돼온 수출이 회복될 것으로 기대된다. 수출이 개선되면 기업의 생산과 고용도 늘어난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계산이다.

물가하락과 경기위축이 서로 맞물리는 디플레현상도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다. 엔저로 수입물가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미 일본 맥도날드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평일에 50% 깎아주던 햄버거 값을 원상회복시켰다. 다른 수입품 가격도 곧 인상될 전망이다.

엔저 효과가 먹혀들 경우에 내년도 성장률은 일단 마이너스는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일본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구조개혁과 부실채권 정리에 따른 충격을 엔저가 다소 완화시켜 줄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러나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엔저 효과를 감안해도 투자위축과 고실업으로 내년 성장률을 -0.5% 정도로 전망하고 있다.

◇ 엔저 위해 돈은 무제한 푼다=일본 정부는 대대적인 통화공급으로 어느 정도 인플레가 발생해도 개의치 않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일본은행은 지난 20일부터 유가증권 매입대상에 기업어음(CP)을 포함시켰다. 이는 중앙은행이 직접 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다.

일본은행은 또 엔화를 풀어 해외채권을 매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국제 금융시장에 엔화공급을 늘려 엔저 추세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 부작용도 만만찮다=엔저가 되면 우선 외국인 투자자금이 일본을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

엔저로 인한 경기회복 정도가 환차손을 감수할 정도가 안된다면 국제 자금은 주저없이 떠날 것으로 보인다.

이 때 주가와 채권값이 함께 떨어지는 이른바 '트리플 약세'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경기회복은 커녕 경제불안은 더 심화될 수 있다.

또 내년 4월부터 1인단 예금보호한도가 1천만엔으로 제한됨에 따라 최근 일부 은행들이 동요하고 있는 것도 좋지 않은 조짐이다.

은행이 한 곳이라도 쓰러지면 금융불안이 가중돼 엔화가치가 겉잡을 수 없이 떨어질 위험도 있다. 이 경우 아시아 통화가치가 덩달아 추락할 수 있다.

◇ 엔저기조 언제까지 끌고가나=일본 당국은 수출이 늘어나고 디플레에 제동이 걸리는 시점까지로 보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이 이 때까지 기다려줄 것인지, 그리고 미국 기업들이 엔저에 따른 달러강세를 얼마나 참아주느냐가 가장 큰 변수다. 만일 내년 미국 경제 회복세가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 엔저정책은 벽에 부닥칠 가능성이 크다.

◇ 한국엔 어떤 영향=원화 가치도 떨어지고 있지만 엔화 하락속도가 더 빨라 일단 한국 수출기업들에겐 부담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기계.부품 등 자본재를 일본에서 많이 들여오고 있기 때문에 조달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잇점은 있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yh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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