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에 구현한 '박물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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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의 미군기지에 들어설 국립중앙박물관 건립기획팀이 어린이 관(館) 의 모델로 요즘 벤치마킹하고 있는 경쟁 박물관이 하나 있다. 물론 그건 유리벽 속에 금관을 쓰고 누워 있는 미이라를 모아둔 곳은 아니다.

장터에서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아줌마.아저씨들을 만날 수 있고, 몇 천년 전 부엌에서 사용되던 밥그릇과 숫가락까지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뜻밖에 이 기획팀이 베끼려는 대상은 책 속에 구현한 박물관이다. 사계절 출판사의 『한국생활사박물관』시리즈의 명성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사실 올해 출판계엔 기획력이 돋보이는 시리즈들이 적지 않았다. 소장 연구자들을 동원해 참신한 논쟁거리를 담은 '책세상 문고'가 지난해 4월 처음 발간된 이래 53권까지 나왔고, 총 1백40권의 책으로 동서고금의 미술을 아우를 영국의 '아트 앤 아이디어즈'시리즈가 한길사를 통해 번역.출간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한국생활사박물관』은 디지털 다매체시대에 응전하는 책의 신개념을 제시해준 기획물이란 점에서 더욱 주목거리다. 지난해 7월부터 나오기 시작한 이 시리즈는 올해 발간된 제3~5권 고구려.백제.신라 생활관편에서 한층 정교한 일러스트레이션과 편집, 실증자료를 토대로 대중역사서의 질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

내년 총 15권으로 마무리지어질 이 시리즈에는 총 15억원이 투입될 예정. 하지만 '작품'은 돈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특히 생활사를 시각적으로 복원한다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어렵다. 이를테면 옷고름 매듭 모양, 세간살이 위치 하나 그려내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따라서 출판계에선 이례적인 인적자원의 가동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란 이름으로 1999년 출범한 이 기획팀은 『세계사신문』의 편집주간이었던 강응천씨의 지휘 아래 정규요원만도 6명이다.

연구 및 편집 책임자인 김영미씨(서울대 강사.근현대사) , 아트디렉터 김영철씨, 편집디자이너 백창훈.이정민씨, 사진작가 손승현씨, 그리고 일러스트레이션 디렉터 곽영권 서울시립대(시각디자인) 교수가 그들이다.

조직적으로는 출판사에 속하지만 구성원은 전문가 외인부대인 셈이다. 여기에 각 권마다 역사학.인류학.고고학 등 20명 안팎의 그 시대 전문가들이 임시위원으로 참가, 집필과 일러스트레이션을 맡는다.

이들은 요즘 내년 초 출간될 제6권 발해.가야편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스스로 한국출판사에 작지 않은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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