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FA시장이 썰렁한 이유

중앙일보

입력

FA(free agent)제도는 선수가 한 팀에서 일정기간을 활약하면 자유계약 신분을 얻게 해주는 선수들의 ''권리장전''이다. FA제도는 메이저리그에서 76년에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그후 FA는 93년엔 일본, 99년부턴 한국에서도 시행되었다. FA권리를 얻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미국은 6년, 일본과 한국은 9년으로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이 기간을 채운 선수들은 돈방석에 앉을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수 있었다.

그런데 적어도 올해만큼은 그렇지 못한 듯하다. 예년과 달리 FA시장이 썰렁하기만 하다. 특히 미국과 한국이 그렇다. 메이저리그의 윈터미팅동안 이뤄진 큰 계약이라곤 제이슨 지암비의 양키스 행(7년간 1억2천만달러)이 전부이다. 올시즌 73홈런을 기록한 배리 본즈의 진로도 아직 결정나지 않았고, 박찬호를 비롯한 투수 쪽은 맺어진 계약이 거의 없다. 그동안 윈터미팅을 통해 케빈 브라운, 알렉스 로드리게스 등, 거물 FA들의 계약이 이뤄졌다는 전례를 감안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시장이 얼어붙어 있기론 한국역시 마찬가지다. 일단 올해엔 FA선언을 한 선수부터가 단 4명에 불과했다. 이 중에 두명은 본래 소속팀에 남았고, 팀을 옮긴 선수는 김민재 한명에 불과하다. FA 최대어라 할만한 양준혁은 현재까지 이적의 실마리를 전혀 못잡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한국과 미국의 구단들이 FA시장에서 몸을 사리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외부적 요인이다. 불경기로 인한 재정 불안과 선수들의 치솟는 몸값에 대해 구단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 또 하나는 FA선수에 대한 불신이다. 한마디로 FA 선수들이 ''돈값''을 못한다는 불신이 저변에 깔려있는 것이다.

이렇게 FA 선수들이 그 동안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온 배경에 몇 가지 요소들이 자리한다. 첫째는 심리적 부담이다. 엄청난 몸값을 받고 이적했으니 구단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마음이 자칫 중압감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올시즌 LG와 4년간 18억에 계약했던 홍현우의 부진이나 알렉스 로드리게스(텍사스 레인저스)가 초반 멈칫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된다.

둘째로 육체적 부상이다. 흔히 FA직전 해에 선수들은 강한 인상을 심어 놓기 위해 오버 페이스를 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는 부상을 감추거나 몸의 무리도 감수한다. 이 결과 이런 선수들은 정작 FA 계약을 맺은 후에는 부상으로 누워버린다. 다저스와 연평균 1100만 달러에 계약을 한 드라이포트가 이에 해당된다.

셋째로 적응의 문제다. 팀을 이적하고 혹은 리그를 바꾸면서 FA 선수들은 한동안 새로운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97년 FA를 행사해 퍼시픽리그의 세이부에서 센트럴리그의 요미우리로 넘어왔던 기요하라가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던게 그 대표적인 예이다. FA는 아니지만 켄 그리피 주니어(신시네티 레즈)의 최근 2년간의 부진도 이런 관점에서 해석될수 있다.

넷째로 노쇠화다. 대부분의 FA선수들은 나이가 30대 이상으로 접어들어서야 FA권리를 얻게 된다. 따라서 그만큼 부상에 노출된 위험도도 높아지는 셈이다. 여기다 거물급 FA 선수들은 대개 고액 장기계약을 맺어놓기에 몸에 이상이 생기면 절대 무리하지 않는다. 따라서 구단만 애가 탄다. 케빈 브라운(LA 다저스)이나 모 본(애너하임 에인절스), 그리고 한국의 대다수 FA선수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학습효과"를 거치면서 구단들의 FA선수를 보는 눈빛이 싸늘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이 결과 공급에 대한 수요가 생기지 않으면서 올해 스토브리그가 침체되고 있는 것이다. 자칫 이런 시장의 분위기에 휩쓸려 박찬호 투수가 실력에 걸맞는 대우를 받지 못할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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