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스타는 필요없다" 실력 제일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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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 히딩크 축구대표팀 감독(사진) 부임 후 한국축구는 선수 기용과 훈련.전술운영 등 소프트웨어에서도 큰 변화를 겪었다.

부임 초기 히딩크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던 한국 국민들은 컨페드컵 프랑스전과 체코 평가전에서 연거푸 0-5로 패하자 그에게 '오대영'이라는 별명까지 붙이고 장기간의 유럽 체류도 비난했다.

그러나 결국 히딩크는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밀어붙였고 크로아티아.미국 평가전을 거치면서 점차 신뢰를 되찾았다.

히딩크가 한국 축구에 가져온 변화의 핵심은 다음 세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 30m의 폭을 유지하라

지난 9일 서귀포 평가전 직후 미국의 브루스 아레나 감독은 "한국 수비진이 상당히 치고 올라와 고전했다"고 밝혔다.

히딩크는 연습 때마다 최후 수비수와 최전방 공격수의 간격을 30m 이내로 유지하라고 강조한다. 공.수간의 폭을 좁히면 상대 공격수로서는 그 사이로 뚫고 들어가기 어렵게 된다. 자연스레 압박축구가 된다.

하지만 선수들로선 70m의 거리를 썰물과 밀물처럼 오가다보니 죽을 맛이다. 평소 히딩크가 체력 강화를 강조하는 이유다. 또 전진수비가 이뤄지다보니 최전방 공격수가 상대 반격을 1차 차단하지 못하면 역습이 된다. 그래서 공격수가 곧 수비수라는 게 히딩크의 지론이다. 결국 수비에 소극적인 고종수.윤정환 등은 눈 밖에 난 반면 최태욱.유상철 등은 히딩크 사단의 중심을 차지했다.

◇ 무조건 달리기는 안된다

예전 대표팀 훈련은 달리기로 시작해 달리기로 끝났다. 무조건 달렸다.

유럽에는 힘에서, 남미에는 기술에서 밀리니 체력전을 펼치자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히딩크 사전에는 달리기가 없다. 항상 공으로 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훈련을 시작하기 전엔 이번 훈련의 목표가 무엇인지 설명했다.

크로아티아 평가전을 앞두고 히딩크는 코너킥 훈련을 하며 수비수 최진철.유상철을 상대 골문 앞에 세웠다.큰 키로 헤딩슛을 하란 뜻이었다.

대신 한쪽에선 최태욱.이천수에게 수비훈련을 시켰다.수비수가 공격을 지원하러 나왔으니 대신 수비하란 뜻이었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훈련하면 실전까지 이어진다는 히딩크의 철학은 오른쪽 윙에게 패스한 뒤 달려들어가 센터링으로 넘어온 공을 차넣는 훈련을 대표팀의 새로운 공격 루트로 자리잡게 했다.

◇ 나 외엔 스타가 없다

홍콩 칼스버그컵 파라과이전에서 만용을 부린 골키퍼 김병지는 연말까지 냉가슴을 앓아야 했다.

히딩크에게 스타는 없다. 체력과 머리만이 대표선수의 자격이다. 그간 전임 감독들은 항상 홍명보를 배치한 뒤 나머지 선수들을 골랐다.

하지만 히딩크는 자신의 밑그림에 선수를 맞춰나갔다. 게다가 체력이 명성을 받쳐주지 않으면 언제든 교체를 각오해야 한다. 그간 세차례의 체력측정을 통해 히딩크는 각 선수들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을 파악했다.

예를 들어 '나이가 든 황선홍과 체력이 약한 안정환은 후반 25분까지'라고 히딩크의 수첩에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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